북한이 26일 영변 핵시설 불능화조치 중단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거부하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약속위반을 들고나왔다. 북한은 지난해 10월3일 6자회담 때 5MW 실험용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시설),핵연료봉 제조공장 등 영변소재 핵시설에 대한 총 11가지 불능화 조치를 회담 참가국들의 상응하는 조치에 맞춰 진행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한 시한(지난 11일)이 지나도 조치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부득불 대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측은 지난 22일 뉴욕에서 진행된 북ㆍ미 양자회동에서 '완전하고 정확한' 핵 검증을 위한 이행계획을 담은 방안을 북한 측에 제시했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답변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검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샘플 채취와 불시방문,미신고시설에 대한 검증 허용 등이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보장되지 않는 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먼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표명한 셈이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난색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성명은 미국에 보다 '탄력있고 부담이 적은' 검증 이행계획서 내용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는 성격이 짙어보인다. 말하자면 미국의 검증방안 제시에 대해 역공을 가한 셈이다. 이같이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북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부시 미 행정부가 임기 내에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짓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북한도 테러지원국에서 빠지는 게 시급한 과제인 만큼 북·미 간 조정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는 정도이지 판을 깨자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올림픽 폐막 이후 본격적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재노력을 강화할 경우 검증 이행계획서가 내용 수정과정을 거쳐 조만간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