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ㆍ중앙대 교수>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3407명으로 하루 평균 36.7명이라고 한다.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만성병조사팀이 재작년 9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7만10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23.4%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고 5.5%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청소년 4명 중 1명이 자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고 100명 중 5.5명이 자살기도를 했다가 살아났다는 조사 결과는 자못 충격적이다. 입시나 성적이 주는 중압감이 무척 클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우리 교육이 지나치게 입시 위주임을 반영하는 실태일 것이다.

지난달 외국 중학교에 유학을 보낸 학부모를 만났는데 여기서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입시 때문에 고민을 지고 살았지만 그곳에 가서는 체육 활동도 열심히 하고 악기도 배우면서 유유자적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노라고 자랑을 했다.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만큼은 한국보다 훨씬 덜한 모양이다.

이 땅의 교육이 지나치게 대학입시 위주로 되어 있기에 특기적성을 살릴 시간이 없다는 것은 일선교사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문예창작과나 국문학과에서 문예특기생을 수시입학 때 뽑는 학교가 많은데,고전읽기 경시대회 같은 것이 있어 고득점을 한 학생을 특기생으로 뽑는다든가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학생을 수시입학 때 뽑는다든가 했으면 좋겠다.

국제문학심포지엄 참석차 페루에 갔다가 남미에서 태어나 서반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민 2세 자녀가 한국에 유학오고자 영어 공부를 따로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 유학하기 위해 한글이 아니라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니!

자살자 5년치 평균을 내보았더니 염세ㆍ비관 자살자가 46.5%로 가장 많았고 병고 22.4%,치정ㆍ실연 8.3%,정신이상 6.4%의 순으로 조사되었다. 무직자 자살은 2003년 52.4%에서 꾸준히 증가해 작년에는 58.4%(7826명)가 직장을 못 가진 상태에서 자살했다. 실업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졸실업자 혹은 고등실업자가 많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는 수치가 아닌가 여겨진다. 지난 18일 통계청 발표에서도 청년백수가 100만명을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하루에 36.7명이나 자살하는 우리나라를 과연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자살의 원인은 내재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우리 사회에 분배의 질서가 잘 확립돼 있고 고용 창출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외부적 요인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힘 센 사람들의 탈법과 탈세,회사 돈 횡령과 주가 조작 소식을 듣고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실업자도 있을 것이다.

자살자 증가와 청소년 자살 시도 5.5%라는 소식을 접하면서 내가 가르쳐 사회로 내보낸 졸업생들을 생각했다. 해마다 50명 가까운 학생들이 졸업하는데 다들 취직해 있는지 노심초사 걱정이다. 졸업생이 어디 취직했다고 전화를 해오면 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다. 물론 어느 지면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어도 기쁘지만 어디에 취직했노라고 소식을 전해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학업성적이 좀 떨어지더라도 어느 방면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학생이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았으면 좋겠다. 또 올해 말에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많이 뽑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