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촛불시위 여대생 사망설'과 관련해 신문광고를 내겠다며 대학생 김모씨가 네티즌들로부터 모금한 돈 일부를 인출해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하지만 김씨는 "광고비로 쓰고 400여만원이 남았다는 것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개인적으로 쓴 돈도 나중에 메워 넣으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모금한 돈 또는 예산을 다른 용도로 쓴 뒤 다시 채워 놓았다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법원은 불법적으로 공공기금 등을 착복했을 때 나중에 메워 놓았다고 해서 무죄로 보지는 않는다. 돈을 다시 채워 놓는 것은 이미 죄를 저지른 뒤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아주 일시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쓰고 즉시 반환하지 않는 한 횡령죄가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판례"라며 "나중에 쓴 돈을 채워 넣고 안 넣고는 형벌의 강도를 정하는 양형에는 영향을 미칠지 몰라도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횡령죄의 판단에는 일반적으로 '불법영득의사'가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해당 자금을 사용할 때 피고인이 불법적으로 이 자금을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금 또는 예산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무조건 횡령죄가 인정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법원은 용도가 엄격히 정해지지 않은 예산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경비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전용했다면 이를 무죄로 판단하기도 했다. 모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인 A씨는 출장을 가지도 않았는데 소속 부원들이 출장을 간 것처럼 서류를 꾸며 출장비 1288만여원을 받아 임의로 사용했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해당 경비가 본래 책정됐어야 할 필요 경비였는데 경비가 나오지 않아 잠깐 다른 자금을 끌어다 쓴 것이라면 횡령죄로 볼 수 없다"며 "A씨는 출장비로 사무실 비품을 구입하는 등 출장비 예산을 유용한 것이 위법한 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횡령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