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증권시장에서는 신속하고 다양한 정보의 집중이 이뤄진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시장가격에 즉각 반영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 간의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시장데이터와 공시자료 등은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장참여자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 증권시장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바로 정보불균형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정보가 때로는 소수의 시장 분석가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근거없는 시장루머가 언론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하는 등 증권시장에서의 정보전달체계를 이용한 정보왜곡 현상이 또 다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최근 시중에 떠도는 9월 금융위기설이 바로 그렇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야말로 낭설에 불과한,시장의 악성 루머에 속하는 것이다. 진원지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근거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시장정보자료를 근거로 하면 9월중 외국인 보유채권의 만기도래분은 8조7000억원이다. 이중 약 2조3000억원가량은 이미 매도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실보유분은 약 6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 금액이 월별 기준으로 보면 적은 규모는 아니다. 9월 금융위기설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채권을 만기에 전액 달러화로 회수할 경우 시중금리 상승은 물론 환율급등과 외환보유액의 급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시장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통계수치만을 강조한 분석 오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단순투자 형태가 아니라 통화스와프와 복잡한 금융기법을 이용해 국내외 금리 차익을 취하는 재정(Arbitrage) 거래를 주로 한다. 다시 말해 국내외 금리차가 존재하는 한 자금을 회수할 아무런 유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회사와의 통화스와프 계약 해지도 단순하지 않다.

설령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내 채권시장의 현황을 너무 모르는 추론이다. 현재 국내 전체 상장채권의 규모는 860조원에 이른다. 이 중 외국인의 투자비중은 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9월 만기분 6조4000억원은 하루 거래대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국내 채권수요 자금이라 할 수 있는 MMF(머니마켓펀드)와 RP(환매조건부채권) 잔고도 80조원이 넘는 충분한 규모이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중 일각에서는 금융위기설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악성루머화해서 번져가는 양상이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의 악몽을 떠올리는 듯 경제 전반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도 한다.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비유를 보자.물이 반 정도 찬 컵을 바라볼 때 시장이 좋을 때는 사람들이 '물이 반이나 남아 있네'라며 바라본다. 반대로 분위기가 나빠질 경우엔 '물이 반밖에 안 남아 있다'고 불안해 한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여건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며,미국발(發) 신용위기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값 폭등이 초래한 인플레 고통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경제여건이 다소 나쁘다 해서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리적 불안감은 위기 극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모든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다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일부 시장분석가나 경제전문가의 책임감 없는 정보분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지록위마(指鹿爲馬)나 양치기 소년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