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싶었다. 윤진희 선수가 인상 97kg 도전에 실패하는 순간,기록이나 메달 때문이 아니라 안쓰러움에 TV를 껐으면 했다. 잠시 뒤 용상 119kg을 번쩍 들어올리고 기뻐하는 윤진희의 모습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답고 당당한 자태 그 자체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은메달이어서 서운하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부상 당한 채 결승전에 나선 왕기춘 선수가 한판패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펜싱 플뢰레 결승전에서 5 대 4까지 갔던 남현희 선수가 역전패했을 땐 '장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극장에 관객이 없다고 한다. 올림픽 중계를 보느라 영화 구경하러 갈 틈이 없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선수 출전경기만 있으면 다들 TV 앞에 모이거나 휴대폰을 켜 든다. 결승전이면 아예 일손을 놓고 가던 걸음도 멈춘다. 금이냐 은이냐.사실 1.2등의 차이는 거의 없다. 눈곱만한 실수,0.1점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일도 많다.

그런데도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모든 영광은 1등의 몫이고 2등은 그 그늘에 묻힌다. 그러니 애써 올라간 결승전에서 패한 선수를 보노라면 마음이 무겁다. 얼마나 기막힐까. 4년 세월이 얼마나 아까울까. 승자의 포효 뒤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거나 울고 있는 모습엔 가슴이 찢어진다.

이젠 울지 않았으면 싶다. 은메달은 안타까움을 넘어 가능성이고,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은메달리스트의 몫은 또 있다. 억울해도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편파 판정 내지 상대의 술수 탓이라고 둘러대지 않고 결과에 승복하는 게 그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1.2등이 나뉘는 게 운동경기뿐이랴.툭하면 한 끗 차이로 2등이 되는데도 우리 사회에선 1등만 치켜세움으로써 2등의 의욕과 용기를 꺾는다. 한숨과 외면으로 상처받은 심신을 더 할퀼 게 아니라 남은 미래가치에 더 큰 박수를 쳐주고 격려함으로써 서럽지 않은 2등,다시 뛰는 2등을 만들어 낼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