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이제 스무살, 다음엔 金 딸 것"


"이원희 선배 대신 금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왕기춘(20ㆍ용인대)이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급 결승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눈물을 쏟았다. 4강전에서 라슐 보키에프(타지키스탄)를 상대로 우세승을 거둔 왕기춘은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던 최민호에 이어 두 번째 유도 챔피언 탄생을 기대케 했지만 결승 상대인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발목잡아메치기 한판패를 당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왕기춘은 충격적인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듯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결승 상대인 맘마들리는 왕기춘이 지난 해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붙어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효과를 따내 이겼던 선수.경기 후 인터뷰를 거부했던 왕기춘은 안병근 감독의 권유로 취재진의 질문에 "도와 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열심히 했지만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왕기춘이 불과 13초 만에 허무하게 패한 이유는 너무 쉽게 다리를 잡혀줬기 때문이다. 조용철 대한유도회 전무는 "맘마들리의 주특기가 다리 잡기다. 그런데 시작부터 다리를 잡혀 어려운 경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이 주특기를 쓸 수 있도록 다리를 열어준 것이 패인이 되고 말았던 셈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판정이다. 안병근 남자대표팀 감독은 왕기춘이 넘어가면서 주심이 한판을 선언하자 팔을 내저으며 판정에 항의의 뜻을 나타냈고 조용철 전무도 경기가 끝난 뒤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옆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한판으로 보기 어려웠는 데도 심판이 한판으로 선언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왕기춘은 1회전에서 리나트 이브라히모프(카자흐스탄)를 곁누르기 한판,2회전에서 쇼키르 무미노프(우즈베키스탄)를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시원하게 돌려세웠다. 하지만 8강 경기 도중 레안드로 길레이로(브라질)와 연장 접전 끝에 다리들어메치기 절반으로 이기는 과정에서 체력소모가 많았던 데다 옆구리까지 다쳤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며 세계 최강의 실력을 보여준 왕기춘은 "원희 형 몫까지 대신해 꼭 금메달을 따겠다"던 다짐이 무위로 돌아가 아쉬움을 안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1988년 9월13일 생으로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은 왕기춘은 이번에 은메달에 그쳤지만 자기 관리만 충실히 할 경우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유도계의 기대다. 왕기춘과 올림픽대표 최종선발전에서 끝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던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는 "아직 스무 살이다. 고개를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 특히 최민호처럼 완벽한 한판 기술을 더 연마한다면 다음 올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