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양 건국유업햄 사장 겸 건국대 축산학과 교수(62)는 열혈 '춤 예찬론자'이자 '댄스홀릭'이다. 강의시간 100분 중 처음 5~10분은 으레 춤에 관한 교양과 역사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로 수강생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영국과 일본은 황실에서 무도(舞蹈)를 주도하고 외국 정상들은 만찬에서 춤을 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한국 대통령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게 답답하다"며 안타까워한다.

기껏해야 저녁 식사 후 폭탄주나 돌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 춤을 가르쳐야만 거친 심성이 순화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댄스철학'이다.

박 교수가 춤을 접한 것은 둘째형 때문이었다. 그의 집안은 충북 제천 박달재 인근에서 양조장을 운영한 덕에 살림이 넉넉했다. 형은 1965년부터 교사 등 지식인들을 집으로 불러 춤을 함께 익혔다. '춤'하면 '바람기'를 연상하는 부정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시절이었지만 춤은 현대인의 교양이라고 믿었던 '깨인' 형으로 인해 모든 식구가 거부감없이 춤을 배웠다.

그러나 이때 익힌 춤은 지터벅(지루박) 같은 동네 사교춤에 불과했다. 춤을 정식으로 배운 때는 독일에서 동물유전육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84년 모교인 건국대 교수로 임용된 후부터다. 합리적인 독일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귀국하니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기대하던 교수 생활도 성에 차지 않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기가 막히더군요. 몸에 한기가 돌아 주위에서 저러다 죽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기공을 배우고 유학시절 중단했던 춤을 다시 시작하니 그제서야 얼굴에 핏기가 돌았습니다. "

초임 교수 시절 그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춤선생을 사사하면서 수년간 춤에 몰두했다. 모던 댄스 5종(왈츠 탱고 퀵스텝 비엔나왈츠 슬로-폭스-트로트)과 라틴 댄스 5종(차차차 자이브 룸바 삼바 파소더블)을 마스터하면서 프로의 경지에 들어섰다. 이런 그의 춤 실력은 사진 촬영을 위해 찾아간 서울 답십리의 '텐댄스클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해 파트너와 어색한 포즈를 취하더니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적인 동작을 이어갔다. 태권도 공인 6단으로 다져진 딴딴한 몸이지만 동작은 유연했고 노련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몸짓으로 파트너를 리드했다. 준비해간 턱시도 두 벌이 비오듯 젖을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플로어를 누볐다.

박 교수는 혼자서 춤을 즐기는 데 만족하지 못해 최근 수년간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쫓아다니며 댄스 대중화 정책을 주문했다. "국장은 물론 장관까지 만나 춤의 대중화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지만 다들 그때뿐이었습니다. 수십개의 협회가 난무하고 무도장도 아닌 콜라텍이나 성인나이트클럽에서 어설프게 익히는 정도로 건전한 춤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습니까. 1960년대 태권도 단체들을 김운용 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통합해 세계화를 이뤘듯 지금 댄스계에도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

그는 태권도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현재 아세아태권도연맹 고문인 박 교수는 열다섯 살부터 태권도를 익혔다. 군대에선 육군사관학교에서 태권도 조교로 근무했고 제대 후에는 태권도 도장을 차려 대학교수 월급이 3만원 선이던 당시에 월 60만원을 벌었을 정도다. 춤의 유연함과 태권도의 강인함을 겸비한 그는 건국유업햄의 경영 성과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발휘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연간 60억원 적자이던 건국유업햄을 지난해 33억원 흑자로 전환시켰고 매출도 2005년 700억원대에서 올해 1100억원을 내다보고 있다.

"춤과 태권도는 물론이고 강의나 경영 등 맡기면 뭐든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전국에 태권도장만큼 많은 댄스홀을 만들어 다들 춤을 즐기게 하는 것입니다. "

글=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