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설정스님은 누구‥조계종 개혁때 단식정진, 대중들의 신망 두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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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둔 어느날 15세 소년이 아버지를 따라 수덕사에 갔다. 절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소년의 말에 아버지는 혼자 집으로 돌아갔으나 아이는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식구들이 절로 찾아오자 아이는 법당 뒤로 몸을 숨겼고,이후 내내 절에서 살았다. 이 아이가 바로 설정 스님이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다섯 살도 안 돼 천자문을 뗐고 여덟 살 무렵에는 통감을 하루 세 장씩 외웠던 천재였다.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계를 받고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한 뒤 범어사 선방 등을 다니다 서른 살 나이에 고입 및 대입 검정고시를 1년 반 만에 끝내고 서울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경허-만공-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설정 스님은 이판과 사판을 초월해 덕숭 문중의 가풍을 잇고 있는 덕숭총림의 지도자다. 수덕사 주지 시절엔 사찰 재산 관리를 체계화해 망실된 재산을 200건 가까이 되찾았고 1994년 조계종 개혁 땐 단식 정진으로 동참했을 만큼 현실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장을 마친 뒤에는 "죽어도 선방에서 죽겠다"며 봉암사,오대산 상원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행에 전념했다.
설정 스님은 "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생긴다(飢寒發道心)는 건 철칙"이라며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전통을 강조한다. 정혜사에서는 지금도 10여 가지 채소를 직접 길러 자급자족할 정도로 몸을 놀려 일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대중들의 신망이 두텁다. 원담 전 방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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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0년 충남 예산 출생
◆1955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1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에게 비구계 받음
◆1976년 서울대 원예학과 졸업
◆1978년 수덕사 주지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1996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2000년 미국 텍사스에 태광사 창건
◆2006년 서울 화계사 회주(현재)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다섯 살도 안 돼 천자문을 뗐고 여덟 살 무렵에는 통감을 하루 세 장씩 외웠던 천재였다.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계를 받고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한 뒤 범어사 선방 등을 다니다 서른 살 나이에 고입 및 대입 검정고시를 1년 반 만에 끝내고 서울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경허-만공-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설정 스님은 이판과 사판을 초월해 덕숭 문중의 가풍을 잇고 있는 덕숭총림의 지도자다. 수덕사 주지 시절엔 사찰 재산 관리를 체계화해 망실된 재산을 200건 가까이 되찾았고 1994년 조계종 개혁 땐 단식 정진으로 동참했을 만큼 현실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장을 마친 뒤에는 "죽어도 선방에서 죽겠다"며 봉암사,오대산 상원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행에 전념했다.
설정 스님은 "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생긴다(飢寒發道心)는 건 철칙"이라며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전통을 강조한다. 정혜사에서는 지금도 10여 가지 채소를 직접 길러 자급자족할 정도로 몸을 놀려 일하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다.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대중들의 신망이 두텁다. 원담 전 방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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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0년 충남 예산 출생
◆1955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1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에게 비구계 받음
◆1976년 서울대 원예학과 졸업
◆1978년 수덕사 주지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1996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2000년 미국 텍사스에 태광사 창건
◆2006년 서울 화계사 회주(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