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비석은 4계절의 속성을 이렇게 구분했다. "봄은 사람의 기분을 방탕에 흐르게 하고,여름은 사람의 활동을 게으르게 하고,겨울은 사름의 마음을 음침하게 하건만,가을만은 사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 " 그런가 하면 박세당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가을은 모든 산의 단풍이 눈부시고,밤에는 벌레소리 흥겨우니 어찌 즐겁지 않느냐"고 했다.

아직도 삼복 더위가 한창인데 오늘이 가을로 들어서는 입추(立秋)다. 생각만 해도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농가월령가' 중 입추를 노래한 '7월령'을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칠월이라 맹추(孟秋.초가을)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화성은 서쪽으로 흐르고 미성은 중천이라/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을 속일소냐/빗소리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 "

앞으로 더위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가을을 시샘하는 노염(老炎)이고 잔서(殘暑)일 따름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이슬이 진하게 내리고,쓰르라미가 울어 댈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가을은 낭만과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가 보다. '어정 7월,건들 8월'이라는 옛말은 아마도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경구일 게다.

생각해 보면 모든 계절은 하나의 출발이나 다름없는데 가을은 미진한 일을 마무리하고 겨울준비를 서두르는 계절이다. 농가월령가에서는 베짱이 우는 소리를 깨쳐 듣고서 두렁 깎고,벌초하고,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장마를 겪었으니 의복을 매만지라고 농부들에게 이른다.

아직 휴가철이 끝나지는 않았지만,도시민들도 가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면서 각오가 새로울 듯하다. 초조하지 않은 이 여유로운 마음이야말로 힘찬 내일을 기약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특히 올 여름은 정치.사회적으로 편할 날이 없이 갈등과 삿대질의 나날로 점철되고 있다. 게다가 더위도 여느 해보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모든 추악한 것과 무더위가 입추의 흥겨운 가을바람에 날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