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막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4일 베이징 시내.불법으로 자가용 영업을 하는 왕씨에게 "올림픽이 열리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승용차 홀짝제로 수입이 절반으로 떨어졌을 그의 입에선 "정말 기쁘다. 영어를 할 줄 알았으면 자원봉사를 했을 것"이란 답이 튀어나왔다. "중국이 정말 강한 나라가 되는데 왜 싫겠느냐"는 반문도 이어졌다.

왕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진시황이 떠올랐다. 그는 중국에 최초의 통일국가의 깃발을 꽂은 영웅이다. 또한 강력한 카리스마로 통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만리장성을 기획하고 축조했다. 제국통일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고도의 통치술이었다.

베이징올림픽이 진시황과 오버랩되는 것은 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아젠다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의 라오바이싱(老百姓 · 서민)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염 방지를 위해 정부가 건설공사 중단을 지시하면서 인부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길거리의 이발사,자전거 수리공들도 자리를 떴다.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통제돼 물가가 뜀박질치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선 그동안 국가적 아젠다를 설정하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올인 전략'이 종종 사용돼 왔다. 국가적 아젠다는 '세계 최고' 혹은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닐 정도로 엄청난 규모로 설정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성취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라오바이싱의 희생은 자연스럽게 합리화된다. 가깝게는 2006년 장강의 줄기를 막아 지도를 바꿔버린 싼샤댐 축조공사도 마찬가지다. 창장(양자강)의 허리를 막아 높이 185m, 길이 2309m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높이는 3배,길이는 2배가 넘는 초대형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는 엄청난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런 희생은 세계 최대의 댐을 만들었다는 영광 속에 묻혔다.

'아젠다 통치'가 수천년간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절대권력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민족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왕정시대나 지금의 공산당 집권시대나 국민에 의한 권력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똑같다. 권력이 영구집권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명분을 얻어야 하고 그것은 국가적 아젠다 설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실천하는 힘은 민족주의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은 중국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이나 환경문제 등에 대해 시비가 발생했을 때 중국인이 병적인 신경질을 보인 것은 바로 중화에 대한 부정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런 '아젠다 통치'는 우리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13억 인구가 중화라는 이름으로 강하게 응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올림픽 개막식 불참의사를 밝혔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결국 이를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게 좋은 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국 관광객의 프랑스 보이콧'이라는 역풍에 굴복했다. 이것이 낙후한 정치의 산물이건 아니건 중국의 내재적 힘이 축적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서 부상한 중국에 대해 보다 정밀하고 장기적인 접근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베이징 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