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불황 속에 명품에도 찬바람이 불까.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 가을 신상품 가격을 올려놓고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년 새 25%가량 치솟은 원.유로 환율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명품 열기가 거셌지만 이는 일부 패션잡화 브랜드에 국한된 것이어서 명품업체들도 불황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수입 명품 브랜드들은 대개 환율 변동에 따라 1년에 두 차례(1,2월 및 7,8월) 가격을 조정하는데 이번 하반기 가격조정에선 유럽 브랜드들이 인상폭 결정에 고민이 많았다. 지난해 8월만 해도 평균 1270원 선이던 원.유로 환율이 지난달에는 1600원 선으로 25% 이상 치솟았기 때문.수입가격이 오른 만큼 소비자가격도 올려야 하는데 대부분 명품업체들은 전년 대비 15%가량 올리는 데 그쳤다. 명품은 워낙 고가여서 가격을 한꺼번에 20% 이상 올리면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클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물가 상승분까지 포함해 수익을 내려면 가격을 25% 이상 인상해야 하는데 국내 경기를 고려해 이 정도로 책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기세일을 마친 명품업체들은 가격 인상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익을 적게 남기는 대신 더 팔아야 하는데 상반기와 같은 판매 호조세가 이어질지 의문이기 때문.프랑스 의류 수입업체 관계자는 "환율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부분은 수익성이 낮은 매장을 줄이거나 신규 출점을 자제하는 등 내부 구조조정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품 붐 속에서도 고환율로 상반기부터 고전해온 곳이 병행수입업체.병행 수입업체들은 공식 수입업체보다 비싼 가격에 명품을 들여오지만 마진을 적게 붙여 백화점보다 최대 30%까지 싸게 팔아왔다. 그 덕에 지난 2~3년간 호황을 누렸지만 상반기 환율 급등으로 가격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문 닫는 곳이 속출했다. 명품 수입가격이 치솟으면서 백화점 판매가격과 차이가 크지 않았고,명품 세일 기간에는 아예 가격 차이가 없어 소비자들이 외면한 것.한 병행수입업자는 "상반기 매출이 50%나 줄었다"며 "대기업과 일부 업체들을 빼고 사실상 문을 닫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을제품 가격을 올려 사정이 다소 나아질 것을 기대했지만 국내 경기 사정을 감안하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면세점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고환율 여파로 내국인 해외여행이 줄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롯데면세점의 경우 여름 성수기인 지난달 매출(시내점 기준)이 전년 동월 대비 6%가량 줄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이런 환율 수준이라면 하반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루이비통처럼 가방.액세서리 등 패션잡화 쪽이 강한 브랜드들은 하반기에도 여전히 호황을 누릴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루이비통은 상반기에만 세 차례 가방 가격을 올렸지만 40% 안팎의 매출 증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명품 매출을 들여다보면 의류는 증가율이 4%에 불과한 반면 액세서리.잡화 등은 30% 넘게 늘었다"며 "하반기에도 잡화류는 잠시 주춤할 수는 있겠지만 매출 호조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