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반체제 작가이며 러시아의 '양심'으로 꼽혀 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3일 밤 모스크바 근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극작가이자 역사가인 솔제니친은 비타협의 정신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과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 현존하는 모순과 비인간성에 주목,20세기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썼다.

1918년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키슬로보드스크 시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그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가 사망해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다. 로스토프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모스크바에서 역사.철학.문학 전문학교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21세 되던 해 대학 동창인 피아니스트 나탈리아 레슈토프스카야와 결혼한 그는 대학 졸업 후에는 시골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포병 장교로 전쟁에 자원 입대해 근무하던 중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1945년 투옥돼 8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는 1962년 강제 노동수용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단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일약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당국의 탄압으로 작품 활동에 방해를 받자 국외에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제1원'과 '암병동' 등 주요 작품들을 서방 세계에서 출판했다.

1967년 비밀리에 집필한 '수용소 군도'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73년 프랑스 파리에서 어렵게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솔제니친은 반역죄로 몰려 체포됐고 이듬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소련 정부는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솔제니친은 이후 독일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서 망명 생활에 들어간다. 미국 망명 시절 '수용소 군도' 2부와 3부를 출판하는 등 꾸준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망명 16년 만인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의해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했으며 4년 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귀국 이후에도 물질주의 등을 비판하며 전통적인 도덕과 가치로 돌아갈 것을 촉구해 왔다.

솔제니친은 1998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80회 생일을 맞은 자신에게 러시아 최고 권위의 '성 안드레이 피르보조반니사도'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러시아를 파국으로 이끈 정권이 주는 상은 받지 않겠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2006년 발간에 들어간 그의 작품 전집은 2010년 완결될 예정이지만 그는 끝내 이를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박영태 기자/고희석 인턴기자(한국외대)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