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면서 필요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측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의 실패가 정부 개입의 가장 중요한 근거임에도 2007년 입안된 정부 규제의 5.5%만이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며,90.2%의 규제는 규제를 도입하는 대신 민간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정부가 각종 규제를 신설하면서 내놓은 규제영향분석서 328건을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결과다.

◆공정거래법의 내부거래 감시규제=대기업에서 계열사 간 상품 및 용역거래를 감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규제다. 공정거래위는 "총수 일가가 출자한 계열회사에 기업집단의 상품ㆍ용역거래를 몰아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제도 도입 취지를 밝혔으나 구체적인 사례나 자료 제시를 통해 내부 거래 증가를 입증하지 않고 있다.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도 기업이 공시에 필요한 절차적 비용만을 비용으로 분류했다. 거래를 공시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 지연에 따른 비효율성으로 기업이 입는 피해와 그에 따른 비용상승은 무시했다.

◆고령자고용촉진법=규제 도입의 핵심 근거인 연령에 따른 고용차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부에서는 규제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없는 것으로 밝혔으나 규제가 오히려 고용 부담으로 작용해 고령자의 취업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고령자의 고용 대체로 타 연령층 노동자가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데 따른 비용 등을 거론하지 않았다. 배우자 출산휴가 부과의무 역시 자율규제 및 인센티브 부여 등의 대안이 존재함에도 검토되지 않았으며,제도 시행으로 기업이 부담할 비용이 늘어날 것이 분명함에도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규제에 따른 비용을 축소했다.

◆청약가점제=청약경쟁률을 낮추겠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정작 왜 경쟁률을 낮춰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또 '무주택자와 부양가족 수가 많은 실수요자'들에게 우선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지만 모든 유주택자가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자가 아니고,무주택자도 순수 거주 목적으로만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설정하기 힘든 상황에서 실수요자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서민층에 내집 마련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가점에 소득수준은 빠져 있어 이 같은 목적이 달성될지 불명확하며,실제로 무주택자가 경제적 약자라면 이들이 가격을 부담하기 힘든 민영 중대형 아파트까지 분양에서 특혜를 줘야 할 이유가 없다.

◆신용카드업자의 금지행위=무분별한 카드 영업과 발급행위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용카드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피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규제가 실효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분석하지 않고 있다. 규제가 실효성을 거두는 경우에는 고객 감소로 일부 카드사들이 서비스를 줄여 소비자 후생 감소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비용측정이 빠져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