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아는 기업인으로부터 청첩장과 함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축의금은 사양하고 대신 신혼부부에게 줄 글을 모으니 결혼생활에 필요한 조언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심 끝에 부부가 함께 읽으면 좋을 시(詩) 몇 편을 골라 보냈다. 축의금 접수 없이 치러진 예식은 조촐하되 경건했다.

근사하지만 이런 일은 드물다. 경조사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엔 다들 동의하면서도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유는 많다. 혼사엔 상대방 입장도 있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어렵고,형편상 축의금으로 예식비용을 보태야 하고,그동안 갖다 낸 축의금이 적지 않다 등.

많은 부모들이 되도록 현직에 있을 때 자녀를 결혼시키고 싶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전문경영인은 사주와의 사이가 벌어져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자 딸의 예식 한 달 뒤 그만두는 걸로 협상했다는 정도다. 축의금도 축의금이지만 행여 하객이 적어 식장이 썰렁해지거나 사돈댁 보기 민망해지는 걸 막고 싶었다는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정년을 앞두고 가짜 청첩장을 돌린 교장이 있다는 데엔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다. 안그래도 자녀 학교 선택 시 교장의 정년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마당이다. 교직생활을 열정적이고 깨끗이 마감하려는 이도 있지만 적당히 지내거나 사적 이익을 챙기려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교장이 투명하지 않거나 한눈을 팔면 교사의 사기는 떨어지고 자칫 교사 간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결과는 학교의 수준 하락이고 그 피해는 몽땅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학교가 좋아지려면 뭐니뭐니 해도 교장이 떳떳하고 공정하고 열심이어서 우수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를 구분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중요한 건 공교육의 수준을 높여 사교육을 받기 힘든 아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학생은 교사,교사는 교장 하기에 달렸다. 가짜 청첩장으로 축의금을 걷겠다는 발상을 한 교장이 영예로운 정년 퇴직에 훈장까지 받을 뻔한 일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공교육 살리기는 불가능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