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6번째 작품 '다크 나이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팬터지영화가 아니라 'A급 범죄영화'로 불릴 만하다. 사실적인 연기와 액션,선악을 넘나드는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가 뛰어나기 때문.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이후 시리즈 중 최고로 평가된다.

'다크 나이트'는 악의 도시 고담시를 배경으로 영웅 배트맨(크리스찬 베일)과 악당 조커(히스 레저)의 대결을 그린다. 악역의 비중이 높은 '배트맨'시리즈답게 여기서도 조커는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배트맨을 죽이려 하는 등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 조커 역을 맡은 배우는 올해 초 약물과용으로 숨진 히스 레저.그는 사람들을 웃기는 광대분장으로 공포스런 광기를 발산한다. 이 때문에 히스 레저의 조커는 어떤 범죄영화의 악역들과 비교해도 살벌하고 무섭다. 초대 조커역 잭 니콜슨 이래 조커역에 드리워진 '장난기'를 말끔히 지워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상처입기 쉬운 섬세한 동성애자역을 해냈던 크리스찬 베일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조커역에 대해 "감정 없는 정신분열증 살인광의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두 얼굴'을 가진 검사(아론 에크하트)는 상징성을 가진 캐릭터다. 검사는 고담시의 범죄를 소탕하기 위한 '선의 화신'으로 등장했지만 악당에게 여자친구를 잃고 얼굴에 화상을 입은 뒤 '악의 전형'으로 바뀐다. 화상 입은 검사의 얼굴은 인간의 양면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조커가 폭탄을 실은 배에 시민들을 태워 궁지로 내몬 장면도 악의 유혹에 이끌리는 인간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평범한 시민들을 태운 배와 죄수를 실은 배에 각각 폭탄을 장착하고 기폭 장치를 서로에게 교차 제공한 뒤 살아남으려면 상대 배를 폭발시킬 것을 종용한 장면에서 관객들은 '인간심리의 현주소'를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액션도 전작들에 비해 사실적이다. 길거리에서 대형 트럭을 완전히 뒤집거나 시카고 시어스타워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배트맨의 고성능 장갑탱크와 그것이 파괴된 후 모터사이클로 바뀌는 모습 등은 밝은 환경에서 그려져 실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어둠 속에서 촬영됐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색감으로 덧칠된 전작들의 액션이 팬터지물의 한계에 갖혔던 것에 비해 진일보했다. 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