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면 공지사항란에 '반기문 장학생 선발 독후감 대회'가 떠 있다. 여기를 클릭하면 오른쪽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에서 연설하는 사진이,왼쪽에는 반 총장이 고등학생 때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사진이 나타난다. 입상자에겐 '유엔본부 견학' 등의 부상이 주어진다는 문구까지 있으니 더욱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 서점은 반 총장 측과 협의 아래 진행하는 행사라고 하지만, 반 총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유엔 측 설명이다. 유엔은 이에 따라 주최 측에 행사를 중단할 것을 구두로 요청했다. 자발적으로 중단하지 않으면 공식 절차를 밟아 중단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앞으로 유엔과 공식 협의를 거치지 않은 행사나 상업적 마케팅에 반 총장의 이름을 활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유엔이 이처럼 반 총장을 이용한 마케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직후부터 한국에서는 '반기문 열풍'이 불었다. 반 총장이 한국을 방문했던 이달 초 열풍은 더욱 거세졌다. 반 총장을 다룬 책만 11종이 출간됐다. 뉴욕을 방문하는 고위 인사들에겐 반 총장 면담이 필수코스처럼 돼 있다.

반 총장은 처음엔 '국민들의 성원이려니'하며 넘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국 방문을 계기로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자신을 다룬 상당수 책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들어 있고,지나치게 자신을 과장하거나 미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뿐만 아니다. 유엔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무총장의 이름이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유엔 규정과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반 총장이 한국 관련 인사를 지나치게 많이 만나는 것도 국제적 공인인 사무총장 직과 어울리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 총장은 얼마 전 사석에서 "취임 1년6개월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당분간 지켜봐 달라"며 평가를 유보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외교관'인 반 총장이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