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까지 개헌을 완료해야 한다는 '조기 개헌론'이 힘을 얻고 있다.

제헌 60주년을 계기로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민과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17일 '연내 연구 착수'로 분위기를 잡았고 유력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논의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힘을 실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개헌 시기는 이미 선거가 없는 내년까지 완료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올해는 일단 여야 의원 167명이 참여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와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준비작업을 하고 내년에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권력구조 재편 방향은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권력구조 개편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 단임제는 잦은 선거로 높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승자 독식 구조여서 사회 통합을 통한 정치 안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YTN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방향에 대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7.3%,의원내각제가 39.5%로 팽팽했다. 어떤 형태든 권력구조를 손봐야 하다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재편 방향에 대한 정치권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용희 자유선진당 의원은 "영남과 호남에서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한 사람이 부통령을 하면 지역감정이 해소되지 않겠느냐"며 4년 중임의 정ㆍ부통령제를 제안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4년 대통령 중임제로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일본ㆍ영국식의 의원내각제나 프랑스식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의회의 위상이 높아지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의원내각제는 일본 천황과 같은 상징적 존재가 있는 입헌군주제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총리와 대통령이 각각 내치와 외교ㆍ국방을 맡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가 더 현실적인 대안"(오제세 민주당 의원)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판도라의 상자 열린다

이번 개헌은 판도라의 상자로 불린다. 그동안 9차례 있었던 개헌은 주로 권력구조 변경에 머물렀던 반면 이번 개헌에선 자유시장경제 원칙이나 영토조항,기본권,지방자치권 등 대부분의 사회 이슈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 이념에 대한 논의는 벌써부터 뜨겁다. 이석연 법제처장이 지난 16일 문제를 제기한 헌법 119조 2항이 논란의 핵심.

이 조항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한 119조 1항의 예외 조항으로 '국가는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명문화한 것으로 이 처장은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며 삭제를 주장했다.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신학용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헌법을 통해 시장주의만 강조되면 걷잡을 수 없는 우익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적 경제 이념이 헌법 내용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에서는 토지 공개념을 명문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또 통일시대에 대비해 영토조항을 개정하고 주거권ㆍ교육권ㆍ노동권 등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대부분 상당한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이슈들이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공동대표를 맡은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개헌과 관련된 요구사항들이 많지만 대부분 오랫동안 논의가 됐던 것들이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유창재/노경목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