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기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주식,부동산,외환시장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투기꾼들은 일단 가격균형을 흐트러 놓고 '지금이 천장이다' 싶으면 신속하게 팔고 시장을 빠져 나간다. 죽어나는 건 소액 투자자들이다.
치고 빠지기는 정치권에서도 아주 교묘하게 이용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애드벌룬을 띄워 놓고 되레 자기 편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슬그머니 뒤로 뺀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대통령이 쏟아 놓으면 참모들이 주워 담고,한 정파의 수장이 정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소속 국회의원들이 불을 끄기 바쁘다.
신뢰를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국가간에도 치고 빠지기가 종종 일어난다. 최근 후쿠다 일본 총리의 처신이 그렇다. 그는 독도에 대한 한ㆍ일간 외교갈등을 부추겨 놓고 여름휴가를 떠나 버렸다. 자칫 파국이 올지도 모를 상황이건만,총리는 '나 몰라라'하는 태도여서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이만저만 부아가 치미는 게 아니다.
이런 치고 빠지기에는 교만이 숨어 있다. 남을 속이려는 계략이 감추어져 있으며 아주 이기적이다. 치고 빠지기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목표에 대한 중요성이 없어질 뿐더러 서로를 이용하려는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 되기 일쑤다. 치고 빠지기는 또 전염성이 강해,한번 당한 사람은 그 수법을 그대로 흉내내게 돼 있다. 그런 까닭에 치고 빠지기는 부메랑으로 돌변하곤 하다.
후쿠다 총리의 행동은 일본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진행되는 느낌이다. 툭하면 잽을 날리면서 영토분쟁을 일삼는 일본 지도자들의 '치고 빠지기 외교'가 언제까지 먹힐지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