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캔 매년 국민 수만큼 만들어

"냄새 나고 기름 먼지 묻혀야 하는 공장에서 매일 땀에 흠뻑 젖어 생활하도록 한 게 미안할 따름이죠.

하지만 내겐 두 아들이 큰 힘이 됩니다. "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삼화실업의 고광민 회장(71)은 두 아들인 고재훈 사장(41), 고기훈 이사(35)와 함께

서울 영등포역에서 기차(무궁화호)를 타고 충남 아산공장에 간다.

고 회장은 "자식들과 함께 기업을 경영하면 안정감도 들고 걱정도 10분의 1로 줄어드는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두 아들과 함께 기차로 출근하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삼화실업은 연간 5000만개의 통조림 캔을 생산한다. 국내 통조림 캔 시장의 13%를 차지한다. 동원F&B의 참치캔,펭귄종합식품의 복숭아캔,머거본 의 땅콩캔 등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 본 국내 식품회사가 주요 거래처다.

삼화실업은 재일 교포인 고(故) 고일상씨(1992년 작고)가 1973년 10월 인천시 부평에 삼화화학을 설립하면서 출발했다. 일본에서 비행기 생산업체의 생산 직공으로 일하던 창업주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수모를 겪었다. 심하게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기술 습득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배운 기술로 일본에서 금속 프레스 사업을 했다. 창업주가 통조림 캔을 만드는 삼화제관을 재일교포 친구들과 국내에 공동 창업한 때는 1963년.모국의 산업 발전에 기여해 보자는 취지였다. 10년 뒤 창업주는 공동 창업자 생활을 접고 통조림 캔의 밀봉에 필요한 '실링 콤파운드' 생산을 위한 삼화실업을 세우면서 독립했다.

1970년대 들어 국내 농.수산물 가공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통조림 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창업주는 이 때 제관부를 신설하고 통조림 캔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0,90년대 통조림 캔 등 포장재 수요가 크게 늘면서 회사도 일손이 바빠졌다.





고광민 회장이 사업을 물려받은 때는 부친이 사망하기 1년 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이 공동 창업했던 삼화제관에서 전무에 오르기까지 25년 동안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고 회장은 "회사를 맡자마자 단순히 통조림 캔만을 만들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생각에 제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술 개발을 끊임 없이 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충남 아산에 제2공장을 설립하고 인쇄부를 신설,통조림 캔에 제품 포장 내용을 인쇄하는 공정까지 들여놓았다. 92년에는 아예 금속 인쇄에 필요한 인쇄용 롤러 제조 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이렇게 해서 2002년 업계에서는 드물게 전 공정을 자동화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외환 위기는 삼화실업을 비켜가지 않았다. 삼화실업의 거래 기업들이 줄도산하자 주거래 은행 직원들은 대출금을 빨리 상환하지 않으면 공장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매일 회사를 찾아왔다. 고 회장은 "받은 어음 28억원이 휴지 조각이 됐을 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며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어려움에 처해 있던 고 회장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은 두 아들이었다. 회사가 여전히 위기 상황이던 2000년 3월 장남 고재훈 사장이 재직 중이던 삼성물산을 나와 회사에 들어왔다. 2년 뒤엔 유학을 다녀온 뒤 무역회사에 다니던 둘째 아들 고기훈 이사도 합류해 해외사업 부문을 맡았다. 3대 경영이 본격화된 때는 지난해 3월 고 회장이 장남에게 사장 자리를 맡기면서다.

두 아들의 합류는 회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98년부터 5년째 이어져온 적자 행진이 2003년부터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고 사장은 "동생과 밤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술 개발과 영업 등 경영 전반을 상의한다"며 "형제간 돈독한 우애로 회사를 키워나간 것이 성장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2006년 127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35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원자재값 상승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매출 목표 14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삼화실업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통조림 캔의 수익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의 고급 인쇄용 롤러를 개발해 미래 수익원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미 세계 3대 롤러 업체인 웨스트랜드,베이스라인,테크노 롤 등과 기술 제휴를 맺어 다양한 인쇄용 롤러 생산 기술을 확보해 놓고 있다. 고 회장은 "평생을 제관 분야에 바쳤고 누구보다 재미있게 일해 왔다"며 "이젠 두 아들이 통조림 캔 분야 최고 기업으로 키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