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검은 재킷을 차려입은 씩씩한 가이드 수영씨가 머뭇거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사실 흔히 알고 있는 '노르웨이 피요르드의 관문'이란 한마디로 베르겐을 정의하기가 어려운 일 아닌가. 1070년 노르웨이 왕 올레프 키레가 터를 잡았고,13세기엔 노르웨이 최초의 수도로,또 노르웨이 최대 도시로 600여년간 번성했던 베르겐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힘든 과제다. 다만 '노르웨이 피요르드의 관문'이 절름발이 묘사란 점은 확실하다. 노르웨이 자연의 한 측면만 그릴 뿐 '베르겐의 문화'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르웨이 문화의 수도'란 말에 만족할 수는 없다. 왠지 밋밋하고 성의도 없어 보인다. 보이는 현상에 더해져야 할 보이지 않는 문화의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막힘 없이 설명하던 수영씨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이맛살을 찡그린 이유다.


■너희들이 예술을 알아?

베르겐을 베르겐답게 만드는 것은 문화다. 베르겐에는 노르웨이 최초의 국립극장이 있고,세계 최고(最古)로 꼽히는 교향악단이 기반을 두고 있다. 북구 최초의 희극작가인 루드빅 홀베르그와 노르웨이 국민음악가 에드바르트 그리그의 고향이 바로 베르겐이다. 극작가 헨릭 입센은 베르겐의 극장에서부터 세계무대에 알려졌으며,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역시 유래없는 작품컬렉션을 지원한 이곳 상인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악과 연극에 그림까지 아우르는 곳이니 베르겐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괜한 게 아니란 것을 알겠다.

그리그란 이름이 제일 친숙하다. 시내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8㎞쯤 떨어진 호프란 곳의 한 언덕에 '트롤트하우겐'이 보존돼 있다. 그가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했던 아내 니나와 함께 1885년부터 22년 동안 살던 집이다. 북유럽 신화의 숲속 요정 트롤이 사는 언덕이란 뜻의 이 집은 지금 그리그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은 그리그의 유품으로 가득하다. 그가 쓰던 가구와 집기,손때 묻은 악보와 편지,평생 받은 선물과 초상화,친구를 초대했을 때 상에 놓던 이름표까지 망라돼 있다.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는 두꺼비 마스코트도 보인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도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과의 관계를 포함한 그의 연대기도 잘 정리돼 있다.

이상하게도 웃는 모습이 담긴 초상이나 사진이 하나도 없다. '오제의 죽음'의 선율이 평생을 지배했던 것 같은 표정뿐이다. 부유한 상인이던 아버지 덕에 그 시절에 해외유학까지 한 사람의 표정치고는 그렇게 어두울 수 없다.

"그의 소원은 두 가지였어요. 아이를 많이 낳아 정원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과 조국의 독립을 보는 것이었지요. 하나는 이루었지만 하나는 그렇지 못했어요. 딸 크리스티나가 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거예요. "

수영씨의 설명을 들으니 그가 앉던 식탁 맞은편 벽면에 걸린 아이들이 뛰노는 그림도 우울해 보인다. 150㎝밖에 안 됐던 키도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액자 속의 그는 항상 니나와 반대였다. 그가 섰으면 니나가 앉았고,니나가 선 자제면 그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마다 놓인 키높이 방석도 키에 대한 그의 고민을 말해주는 것 같다.

박물관 옆 아래로 내려가는 길목에 200석 규모의 예쁜 콘서트 홀이 있고 그 아래 그리그의 작업실이 있다. 그리그가 생전에 쓰던 피아노와 의자 하나로 꽉 차있는 작업실의 창은 턱 밑까지 파고 든 피요르드를 향해 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피요르드의 물비늘을 따다 오선지에 뿌린다면 그 조용하면서도 찬란한 '아침분위기'의 선율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바다를 바라보는 절벽 중간에 니나와 함께 잠들어 있는 그리그가 벌떡 일어나 마지막까지 머물러 있는 오후의 햇살을 향해 지휘봉을 들 것만 같은 분위기다.

■예와 오늘의 절묘한 어울림

베르겐의 중심은 보겐만에 접해 있는 브리겐이다. 15채가량의 중세풍 목조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도 올라 있다. 브리겐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유럽 상권을 장악했던 북독일 무역상인 중심의 도시동맹인 '독일한자' 상인들이 이곳에 상관을 짓고 무역을 했다. 이 지역에 풍부한 대구를 수출하고 곡물을 수입했던 그들은 독일 남자상인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으로,엄격한 규율 아래 일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걸을 때마다 삐걱대기는 해도 더할 수 없이 촘촘히 놓인 나무보도와 집들의 단단한 기초가 그 규율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장 오래된 집이 한자박물관으로 개조돼 있다. 비좁은 선실 같은 잠자리와 일터인 창고가 함께 있는 구조다. 좁은 데다 어두컴컴하기까지 해 도대체 사람이 살았던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대구를 압착해 어유를 뽑던 도구를 보니 노르웨이산 어유가 유명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성인병에 좋다는 오메가3 말이다. 수영씨에 따르면 이곳의 어유제품은 심장,관절,뇌 등 부위별 처방대로 고를 수도 있다. 값은 비싼 편이다. 필수성분의 함량 차이야 있겠지만 우리나라 할인점에서 파는 비슷한 제품보다 서너 배 더 줘야 한다.

사실 브리겐의 이 나무집들은 재건축으로 역사에나 기록될 뻔했다. 당시의 나무집들은 화재에 꽤나 취약했던 모양이다. 이 부두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1702년의 대화재 같은 사례가 많이 기록돼 있다. 나무에 좀이 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선기름을 바르기도 했다고 하니 그 사정을 알 만하다. 대화재 때도 이 나무집들의 기본 구조와 형태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한자상인들이 건축물에 대한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번은 이들 나무집을 허물고 석조건물로 지으려고 했는데 공사에 들어가기 직전 다른 지역에서 큰 불이 나면서 계획이 무산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부두광장의 어시장은 브리겐과 달리 요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항구도시의 어시장답게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어시장은 오전 7시부터 열리는데 연어,고래고기,새우 등 인근 바다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넘친다. 캐비어나 소시지에 더해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샌드위치에 과일을 파는 매점도 보인다. 늑대모피나 옷가지며 기념품을 파는 노점까지 없는 게 없다. 115년 전통의 빵집 브룬에서 먹는 시나몬 케이크와 커피 한 잔도 근사하다.

■베르겐을 잊게 하는 기막힌 전망

자,이제 플뢰엔 산 전망대에 오를 차례다. 베르겐은 7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해발 320m 높이인 이 플뢰엔 산정에서의 전망이 제일 좋다. 어시장에서 3분 거리에 정상으로 향하는 로프웨이인 푸니쿨라가 다닌다. 전망시설이 있는 정상까지는 7분 거리다.

플뢰엔 산 정상에서의 전망은 과연 실망시키지 않는다. 브리겐을 중심으로 한 베르겐 시내와 커다란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그리고 깊이 패 들어온 피요르드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베르겐에서 베르겐을 잊게 할 정도로 장쾌한 전망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특히 한여름밤 오후 10시쯤의 야경이 낭만적이라고 한다. 내려갈 때는 푸니쿨라를 타는 대신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 길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베르겐=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베르겐카드 있으면 시내여행 편해

박물관ㆍ일부버스 무료 이용가능

노르웨이의 정식 국명은 노르웨이왕국이다. 왕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입헌군주제하의 내각책임제로 운영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서북부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수도는 오슬로.남한의 4배 정도 되는 땅에 460만명이 살고 있다. 한국보다 8시간 늦다.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서머타임제를 적용,여름에는 7시간 늦다. 통화단위는 노르웨이 크로네.현금 매입 기준 1크로네에 200원 안팎이다.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오슬로)행 직항편이 없다. 보통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덴마크 코펜하겐이나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해 오슬로로 들어가며 베르겐행 비행기도 탈 수 있다.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간다면 기차여행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베르겐에서 하루 코스의 여행을 즐기려면 '노르웨이 인 어 넛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좋다. 베르겐카드가 있으면 시내여행을 하기에 편하다. 박물관 등에 무료 입장할 수 있으며 일부 버스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어른 기준 24시간 190크로네,48시간 250크로네.스칸디나비아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3-6421,www.stb-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