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같은 베트남의 대도시는 일견 혼란스럽다.

푹푹 찌는 오후의 열기 속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오토바이며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에 눈과 귀가 따갑다.

비좁은 뒷골목의 허름한 상가며 집들은 뒤엉킨 듯 난맥상을 이뤄 어지럽다.

삶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재래시장 한복판의 풍경이 연상된다는 이들도 있지만,조용한 휴식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저리를 칠 만한 환경임에 틀림없다.

중부 해안 최대의 상업도시인 다낭과 그 주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오른 후에 및 호이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시원한 그늘의 숲,그리고 옛 베트남 왕조의 유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문화체험을 겸한 휴양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중부 최대의 상업 도시,다낭

다낭은 하노이와 호찌민에 이은 베트남 제3의 도시.베트남 중부지방 관광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오행산(五行山)이 유명하다.

5개의 높지 않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목ㆍ화ㆍ토ㆍ금ㆍ수 오행을 관장하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마블산이라고도 한다.

오행산 중에는 물을 관장한다는 투이손산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투이손산에는 많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마다 불상이 모셔져 있다.

156개의 계단 위에 있는 정상 전망대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이웃한 4개의 봉우리와 기슭에 자리한 마을 풍경이 그림 같다.

산기슭 마을의 대리석 공방에서 대리석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다낭성당은 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천주교 성당.다낭 건축물의 상징격이다.

특히 중세 유럽풍의 외부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타임머신을 탄 듯한 역사 도시,호이안

다낭과 수로로 연결된 호이안은 17세기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한때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방 국가 상인들이 드나들던 중계 무역 도시로 번성했던 곳으로 아직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구시가지는 찬푸 거리와 투본강에 접해 있는 바크당 거리 일대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박물관과 오래된 가옥,문화재 등 볼거리가 많다.

해질 무렵 투본 강변의 카페 분위기가 낭만적이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에서는 참파왕조(2∼17세기) 때부터 발전해온 호이안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미손 유적을 빼놓을 수 없다.

호이안에서 30㎞쯤 떨어져 있는 미손은 참파 왕국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참파왕국이 베트남에 정복당한 뒤 정글 속에 뭍혀 있다가 19세기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 중 미군의 폭격으로 많이 훼손됐지만 아직 70여 개의 건축물 유적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왕도의 영화,후에

후에는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구엔왕조(1802∼1945년)의 도읍이었던 곳이다.

다양한 건축양식의 왕릉을 비롯한 옛 왕조의 흔적들이 구시가에 몰려 있다.

'커다란 궁전'이란 뜻의 다이 노이는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구엔왕조의 왕궁이다.

높이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이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 등으로 7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돼 지금은 10여 채만 남아 있다.

관광객들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후에 외곽에 왕릉과 사원들이 많다.

구엔왕조의 마지막 왕릉인 카이딘 왕릉은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섞인 특이한 구조가 눈길을 끈다.

콘크리트 석상이 유럽인의 모습과 유사하다.

내부의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이 있으며 그 아래 황제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