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계기가 돼 시작된 어수선한 시국은 정부의 국정 운영 불찰에서 빚어졌다.

지난 10여년간 깊게 팬 이념의 골에 따른 사회 구성원 간의 적대적 분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이를 헤아리지 못한 정부가 일방통행 식으로 국정을 밀어붙이려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더구나 정체성이 모호한 이른바 '실용'을 국정 운영의 틀로 내걸면서 정권의 지지 기반도 빨리 잃었다.

그렇다고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는 식물정부로 전락하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과의 추가 협상으로 국민이 원하는 바도 대부분 달성된 마당에 정부는 정부대로,국민은 국민대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 캠페인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다.

거기에 이념보다는 실용을 강조해 이념 갈등에 지친 국민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경제 살리기를 중심으로 그 동안 해이해진 질서를 바로잡고,실추된 권위와 도덕,윤리,그리고 품위를 바로 세우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우선 경제 살리기의 주역은 기업가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몸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인 사업을 벌이면서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들이 불확실성을 떠맡는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잘못된 경제학에 근거한 각종 규제를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정비해야 한다.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규제는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철폐하는 것이다.

규제 철폐를 주장하면 흔히 '극단'이라고 몰아붙인다.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규제는 공익(公益)이 아니라 사익(私益)을 위해 발효된다는,이른바 사익설을 제창하며 규제를 경제학의 한 분야로 개척한 공로로 198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학의 조지 J 스티글러 교수는 평생 '극단'이란 평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에세이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특정 학자들을 극단으로 모는 것은 그들의 논리에 더 이상 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 논쟁에서 그들을 아예 배제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한 바 있다.

평생 동안 반(反)트러스트법을 연구해 온 D T 아르멘타노 교수는 규제가 있기에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이익 집단의 존재가 규제 철폐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규제 철폐는 곧 시장경제의 신장을 의미한다.

시장경제 하면 정글자본주의나 빈익빈 부익부 등,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사회 구성원을 협동으로 인도해 신뢰와 품위의 사회로 나아가도록 한다.

역사적으로 시장에서 멀어진 사회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했고,결국 몰락했다.

구(舊)소련과 북한만 보더라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세상일을 인식하는 데 이념의 창을 배제할 수 없다.

이념의 밑받침이 없는 실용은 목적지 없는 항해(航海) 길에 나선 돛단배와 같다.

실용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얻으려면 시장경제의 바탕을 제공하는 자유주의 이념의 밑받침을 필요로 한다.

정부는 그간의 실수를 거울삼아 국정 운영의 추동력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규제 철폐를 통한 기업 환경 개선,치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공기업 민영화,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립대 법인화 등의 중요한 과제를 차질 없이 실행해야 한다.

야당도 정부가 추동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은 정치적 동반자이지 적이 아니다.

한시 바삐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지지율을 올리는 현명한 방법은 여당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며 협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