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무용가 홍신자씨(68·사진)는 한국 무용계의 '보물'로 불린다.

국내 무용계가 창의력과 독창성의 문제를 지적받는 것과 달리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참신함과 통찰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때로는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무용계의 섬' 같은 존재로 불리기도 한다.

홍씨가 내달 3~6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데뷔 35주년 솔로 무대를 갖는다.

이번에 준비한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영감을 얻은 '홍신자의 고도'.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욕망을 갈구하고 그것이 실현되기를 기다린다는 데서 모티브를 얻었다.

원작을 춤으로 재해석했다는 의미에서 '댄스드라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홍씨는 이번 무대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기다림을 몸짓으로 구체화하면서 한 시간이 넘는 동안 홀로 무대를 채워 나간다.

솔로 무대는 2001년 뉴욕 라마마극장의 '래핑 우먼(laughing woman)' 공연 이후 처음이다.

홍씨는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내가 '죽음'에 얽매여 있지 않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죽음 자체가 두려웠다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며 "이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기 때문에 '죽음'에 맞선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명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홍씨는 '일생 동안 해야 할 것'을 찾아 1966년 미국에서 호텔 경영을 공부했다.

그러나 알윈 니콜라이의 공연을 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1968년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다.

1973년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데뷔작 '제례'에선 상의를 모두 벗은 채 삼베 치마를 입고 춤을 췄다.

그의 파격적인 안무에 '무용계의 신선한 바람'이라는 호평과 '저게 무용이냐'는 악평이 동시에 나왔다.

홍씨는 2년 뒤 '제례'를 다시 국내에서 공연했으나 무용에 대한 국내 예술계의 인식에 한계를 느껴 10년 동안 한국에 발길을 끊기도 했다.

1993년에 귀국한 뒤 경기도 안성 죽산의 흙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요가로 눈을 뜨고 저수지를 한 시간씩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귀국하면서 창단한 웃는돌무용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며 1995년부터 '안성죽산국제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오는 11월 미국 뉴욕의 라마마극장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3만~4만원.(02)588-6411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