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물가 불안과 시중 유동성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지급준비율 인상 등 통화긴축에 나설 것이란 우려로 채권금리가 급등했다.

23일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5%포인트 뛴 연 5.87%,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6%포인트 뛴 연 5.95%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또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고유가와 외국인의 주식매도가 이어진 가운데 정부의 '시장개입 공백'을 틈타 11원이나 오르며 1040원대 재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긴축 가능성에 금리 폭등

이날 채권금리 급등세를 이끈 것은 한은의 통화긴축 가능성이었다.

한은이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금리 인상이나 지급준비율 인상,총액한도대출 축소 등 '유동성 조이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시장심리가 한쪽 방향으로 급격히 쏠린 것.

채권시장 관계자는 "최근 물가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경기 둔화 때문에 한은이 통화긴축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과 달리 긴축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크게 당황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최근 물가 불안은 위험수준이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하고 6~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또 대표적 유동성 지표인 광의통화(M2) 증가율은 15%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통화긴축 가능성 보도로 채권금리가 급등하자 "(현재로선 이 같은 조치를) 검토한 적이 없다"(이주열 부총재보)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당장 한은이 긴축 카드를 꺼내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인플레이션은 유동성 급증 때문이라기보다 원자재값 상승 등 외부요인 때문"이라며 "지급준비율 인상으론 물가를 잡기 힘들고 금리 인상은 경기 둔화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다른 채권애널리스트도 "지급준비율 인상은 선진국에선 이미 사문화된 정책인 데다 금융권 간 형평성 논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6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동성 팽창에 대해 "생각보다는 조금 높지만 경제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고 밝혔었다.

유동성을 잡기 위해 지급준비율 인상 등에 나설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의미다.

한편 외국인들은 이날 채권금리 급등(채권값 급락)을 틈타 국채선물을 2000계약 이상 순매수했다.

◆환율은 1040원대 '노크'

원ㆍ달러 환율도 이날 큰 폭으로 치솟았다.

전날보다 11원 오른 1039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환율은 정부가 시장에서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면 잠시 주춤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어김없이 반등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펀더멘털(기초여건)상 환율 상승 요인이 우세하다고 지적한다.

당장 국제 유가 상승은 정유사들의 결제 수요를 유발하는 데다 글로벌 신용경색 재발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에선 외국인들이 11일연속 주식을 처분하고 있다.

이날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4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 주식매도는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수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는 환율 하락보다는 상승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정부의 달러 매도 개입을 제외하면 시장 전반적으로 달러 매수 세력이 훨씬 많다"며 "1020원대까지 밀리면 달러 매수세가 강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