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박상운 FWS투자자문 사장 … 튀어오르는 공 내려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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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 뉴욕 길모퉁이에서 한 신사가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런데 구두를 닦던 소년은 옆의 친구에게 주식투자로 돈을 번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신사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 보유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가 주식을 팔고난 며칠 후 미국에는 대공황이 발생하고 주가는 대폭락했다.
흔히 '주식광풍의 시기'를 경계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일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증시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시기가 3번 있었다.
1989년과 1994년,1999년 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다가 폭락했을 때다.
박상운 FWS투자자문 사장은 1987년 증권사에 입사해 일찌감치 주식매매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그는 89년과 99년 두 차례 모두 주식을 팔아치우고 시장에서 비켜나 있었다.
당시 논밭을 팔아 주식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 사장은 '뉴욕의 노신사'를 떠올렸다.
그는 "주가가 오르려면 반드시 후속 매수세력이 필요한데 당시엔 주식을 살 사람들은 모두 주식시장에 들어왔다"며 "마지막 투자자들이 없는 상황이어서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심하다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20여년간 한번도 쓴 잔을 마셔본 적이 없다.
오히려 주식투자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큰 돈을 벌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박주신'이다.
주식의 신이라는 뜻이다.
박 사장의 주식투자 실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240만원의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이미 억대의 돈을 벌었다.
금융 건설 무역 등 '트로이카주'로 불리던 주식들이 박 사장의 단골 투자대상이었다.
당시 공영토건 같은 관리종목에 투자해서 하루에 2배 이상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에 입사한 그는 첫 부서로 강남지점에 배치돼 지점 약정의 90%를 혼자서 채웠다.
그러던 박 사장은 89년 초 시장이 과열되자 미련없이 주식에서 손을 떼고 주식과 관련 없는 채권부로 옮겼다.
이후 유학을 다녀와 국제부로 발령난 박 사장은 95년 서울증권이 해외에서 설정한 3000만달러 규모의 역외펀드 운용을 맡아 투자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95년 4월부터 97년 2월까지 1년10개월 동안 이 펀드의 운용을 맡았는데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가 23.1%나 하락했지만 펀드수익률은 22.1%에 달했다.
펀드자금의 조달금리가 14%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익률이다.
이후 박 사장은 선물.옵션 투자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업계에서 '고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99년 이후 현대증권 부국증권 삼성증권 등에서 선물.옵션 딜러로 고유계정과 고객자금을 운용했는데 당시 그의 연봉은 수십억원이나 됐다.
그만큼 회사에 큰 돈을 벌어준 것이다.
박 사장이 가장 선호하는 주식은 성장성이 있으면서 장기간 시장에서 소외된 주식이다.
그는 2006년 말 자문사를 차린 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중소형 보험주와 남해화학 NHN 메가스터디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제일화재 한화손해보험 등은 평균 매수단가가 4000원대였다.
남해화학은 미국 비료주가 많이 올랐는 데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아 사들였는데 지금까지 60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매수했단다.
지수가 크게 오른 2년여 동안 이들 종목은 소외돼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덕분에 2006년 말부터 박 사장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은 코스피지수가 29% 오른 최근 1년6개월여 동안 최고 80%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박 사장은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꽤 유명인사다.
그의 집과 회사가 모두 타워팰리스에 있고 고객들 중 상당수가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는 회원이 100명이나 되는 타워팰리스 골프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박 사장의 투자방식은 일반인들과 정반대다.
보통 주식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이익이 나면 주식을 팔아치우고 손해를 보면 끝까지 들고가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반대로 일정 수준의 손해가 나면 미련없이 주식을 판다.
반면 일단 이익이 나면 주가가 '상투'를 치고 충분히 '어깨'까지 내려오기 전까지는 팔지 않는다.
튀어오르는 공(오르는 주식)은 절대 내리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남해화학 메가스터디 중소형 보험주 등 고수익을 낸 종목을 여전히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박 사장은 "손실난 종목들은 10∼15% 손실을 보지만 이익을 낸 종목에서는 100∼150% 이익을 낸다"며 "누구도 주가의 저점과 고점을 알 수는 없는 만큼 오를 때 분할매수 방식으로 사서 고점에서 어느 정도 내려왔을 때 분할매각을 하는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투자정보를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 수집한다.
하루에 신문에 투자하는 시간만도 족히 4∼5시간이나 된단다.
경제면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면도 샅샅이 훑는다.
반면 애널리스트들이 내는 보고서 등 증권가 정보는 크게 참고하지 않는다.
신문의 행간을 읽으면 주식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사장은 자문사를 차린 후 선물.옵션보다는 주식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대세상승장이기 때문에 굳이 선물.옵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주식시장은 머지않은 시기에 코스피지수 5000포인트 이상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89년 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을 때 상장사의 총이익은 1조원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조원을 버는 기업들이 10여개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수 2000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제성장기에는 고금리가 유지되고 기업들도 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박스권에서 등락을 한다"며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제 주식시장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오히려 고도성장기가 지난 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조정장에 대해선 올해 최저점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사장은 "우리 증시가 2003년 이후 4년반 동안 별다른 조정없이 올랐다"며 "한번은 강한 조정을 받을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 저점을 깨면 투매가 쏟아지고 이후 매물공백이 생기면서 지수가 급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 중 60% 이상이 펀드 등을 통해 주식시장으로 들어올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증시는 갈수록 변동성이 낮아지고 연기금 등 기관이 주도하는 선진국형 증시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태완/사진=허문찬 기자 twkim@hankyung.com
그런데 구두를 닦던 소년은 옆의 친구에게 주식투자로 돈을 번 얘기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신사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 보유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가 주식을 팔고난 며칠 후 미국에는 대공황이 발생하고 주가는 대폭락했다.
흔히 '주식광풍의 시기'를 경계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일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증시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시기가 3번 있었다.
1989년과 1994년,1999년 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다가 폭락했을 때다.
박상운 FWS투자자문 사장은 1987년 증권사에 입사해 일찌감치 주식매매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공교롭게도 그는 89년과 99년 두 차례 모두 주식을 팔아치우고 시장에서 비켜나 있었다.
당시 논밭을 팔아 주식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 사장은 '뉴욕의 노신사'를 떠올렸다.
그는 "주가가 오르려면 반드시 후속 매수세력이 필요한데 당시엔 주식을 살 사람들은 모두 주식시장에 들어왔다"며 "마지막 투자자들이 없는 상황이어서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심하다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20여년간 한번도 쓴 잔을 마셔본 적이 없다.
오히려 주식투자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큰 돈을 벌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박주신'이다.
주식의 신이라는 뜻이다.
박 사장의 주식투자 실력은 이미 대학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240만원의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에 이미 억대의 돈을 벌었다.
금융 건설 무역 등 '트로이카주'로 불리던 주식들이 박 사장의 단골 투자대상이었다.
당시 공영토건 같은 관리종목에 투자해서 하루에 2배 이상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에 입사한 그는 첫 부서로 강남지점에 배치돼 지점 약정의 90%를 혼자서 채웠다.
그러던 박 사장은 89년 초 시장이 과열되자 미련없이 주식에서 손을 떼고 주식과 관련 없는 채권부로 옮겼다.
이후 유학을 다녀와 국제부로 발령난 박 사장은 95년 서울증권이 해외에서 설정한 3000만달러 규모의 역외펀드 운용을 맡아 투자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95년 4월부터 97년 2월까지 1년10개월 동안 이 펀드의 운용을 맡았는데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가 23.1%나 하락했지만 펀드수익률은 22.1%에 달했다.
펀드자금의 조달금리가 14%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익률이다.
이후 박 사장은 선물.옵션 투자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업계에서 '고수'로 인정받았다.
그는 99년 이후 현대증권 부국증권 삼성증권 등에서 선물.옵션 딜러로 고유계정과 고객자금을 운용했는데 당시 그의 연봉은 수십억원이나 됐다.
그만큼 회사에 큰 돈을 벌어준 것이다.
박 사장이 가장 선호하는 주식은 성장성이 있으면서 장기간 시장에서 소외된 주식이다.
그는 2006년 말 자문사를 차린 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중소형 보험주와 남해화학 NHN 메가스터디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제일화재 한화손해보험 등은 평균 매수단가가 4000원대였다.
남해화학은 미국 비료주가 많이 올랐는 데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아 사들였는데 지금까지 600%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매수했단다.
지수가 크게 오른 2년여 동안 이들 종목은 소외돼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덕분에 2006년 말부터 박 사장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은 코스피지수가 29% 오른 최근 1년6개월여 동안 최고 80%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박 사장은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꽤 유명인사다.
그의 집과 회사가 모두 타워팰리스에 있고 고객들 중 상당수가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는 회원이 100명이나 되는 타워팰리스 골프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박 사장의 투자방식은 일반인들과 정반대다.
보통 주식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이익이 나면 주식을 팔아치우고 손해를 보면 끝까지 들고가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반대로 일정 수준의 손해가 나면 미련없이 주식을 판다.
반면 일단 이익이 나면 주가가 '상투'를 치고 충분히 '어깨'까지 내려오기 전까지는 팔지 않는다.
튀어오르는 공(오르는 주식)은 절대 내리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남해화학 메가스터디 중소형 보험주 등 고수익을 낸 종목을 여전히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박 사장은 "손실난 종목들은 10∼15% 손실을 보지만 이익을 낸 종목에서는 100∼150% 이익을 낸다"며 "누구도 주가의 저점과 고점을 알 수는 없는 만큼 오를 때 분할매수 방식으로 사서 고점에서 어느 정도 내려왔을 때 분할매각을 하는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투자정보를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 수집한다.
하루에 신문에 투자하는 시간만도 족히 4∼5시간이나 된단다.
경제면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면도 샅샅이 훑는다.
반면 애널리스트들이 내는 보고서 등 증권가 정보는 크게 참고하지 않는다.
신문의 행간을 읽으면 주식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사장은 자문사를 차린 후 선물.옵션보다는 주식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대세상승장이기 때문에 굳이 선물.옵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주식시장은 머지않은 시기에 코스피지수 5000포인트 이상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89년 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었을 때 상장사의 총이익은 1조원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조원을 버는 기업들이 10여개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수 2000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제성장기에는 고금리가 유지되고 기업들도 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박스권에서 등락을 한다"며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제 주식시장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오히려 고도성장기가 지난 다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조정장에 대해선 올해 최저점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사장은 "우리 증시가 2003년 이후 4년반 동안 별다른 조정없이 올랐다"며 "한번은 강한 조정을 받을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 저점을 깨면 투매가 쏟아지고 이후 매물공백이 생기면서 지수가 급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 중 60% 이상이 펀드 등을 통해 주식시장으로 들어올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증시는 갈수록 변동성이 낮아지고 연기금 등 기관이 주도하는 선진국형 증시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태완/사진=허문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