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은 한국 연극의 거장 고(故) 차범석씨의 2주기였다.

'산불'(1962년) '불모지'(1957년) 등의 작품을 남긴 차씨는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극을 확립한 극작가이자 연출가.

그의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차범석희곡상의 첫 수상작 '침향'이 11~2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제작비 2억5000만원을 투입한 이 작품은 박명성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45·사진)가 차씨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제작한 것.박 대표로선 10년 만의 연극무대 복귀작이기도 하다.

박 대표가 차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 어느 공연장.당시 신출내기 조연출이었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차씨를 만났고,그때 이후 줄기차게 쫓아다녔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어요.

제가 연극판에 뛰어들게 된 것도 고등학교 때 차 선생님이 쓰신 '산불'을 보고 난 뒤부터였죠."

그는 차씨로부터 연출가로서의 모든 기본기를 전수받았다.

돈 문제에 깨끗할 것이며,사업가적 마인드에 치우쳐 예술적인 소양을 쌓는 데 게을리하지 말라는 조언도 새겨들었다.

그러나 혼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단 '산불'을 뮤지컬 '댄싱섀도우'로 만들기 시작한 1999년에 원작료의 잔금 지불이 일주일 늦어졌을 때 단 한 번 야단을 맞았다.

"가장 가까운 당신에게도 계약금 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도대체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고 처음으로 호통을 치셨죠."

'침향'은 6·25 전쟁 때 좌익활동을 하다 월북한 뒤 50여년 만에 귀향한 주인공 강수의 이야기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들,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실성한 아내 애숙,자신 때문에 부친을 잃은 친구 택성과 화해하는 과정을 담았다.

민중이 피해자가 아닌 역사의 주체라고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박정자,정동환,박인환,손숙 등 연극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한꺼번에 출연하는 것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손숙과 박인환은 작품을 보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박 대표에게도 제작자로서의 초심을 회복하게 해준 작품이다.

그는 "'침향'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닌 화해를 그리고 있다"며 "차 선생님의 족적에 맞게 사실주의 연극의 표본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관람료 2만~5만원.1544-1555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