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리맨 5년' 접고 27세때 창업
노사분규땐 직장폐쇄후 斷食 '뚝심'


최평규 회장은 1952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얘기를 꺼릴 정도로 집안은 넉넉하지 못했다.

1971년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뒤 '닭발 장사' 등으로 학비를 벌었다.

대학 4학년 때 받은 징병검사에서 '무종(무등급)'을 받아 군대를 면제받았다.

심한 결핵을 앓은 후유증 때문이었다.

군대 문제로 큰 기업에서는 최 회장을 뽑아주지 않았다.

결국 센추리라는 에어컨 제조업체에 들어갔고 여기서 향후 사업 밑천이 된 '열공학' 지식을 익혔다.

1976년에는 일본 히타치제작소에서 1년간 기술연수를 받기도 했다.

5년간 직장 생활을 한 뒤 1979년 삼영기계(현 S&Tc)를 창업했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창업 이후 한동안은 두 개의 명함을 갖고 다녔다.

하나는 '부장 최평규',다른 하나는 '대표이사 최평규'.나이가 어려 영업 일선에 나설 때는 부장 명함을 사용했다.

최 회장은 남다른 '뚝심'으로 유명하다.

어지간한 일로는 움츠러들지 않는다.

문제를 피해가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고질적인 노사분규를 해결한 비결도 우직한 '뚝심'이었다.

2006년 인수한 S&T대우(옛 대우정밀)에서 노사분규가 터졌을 때 최 회장은 직장폐쇄를 선언한 뒤 단식에 들어가는 '강수'를 뒀다.

5일 만에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 한밤중에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를 계기로 노사가 조금씩 양보해 한 달 만에 임금협상을 전격 타결했다.

바다낚시와 클래식 음악 감상을 즐긴다.

바닷가 출신답게 낚아 올린 조과를 바로 회로 쳐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룹 주최 음악회에서 수십명의 관혁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일부 악기가 빠진 것을 지적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다.

유명 지휘자인 금난새씨가 S&T그룹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