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교과서와 싸우기에도 바쁜 시간에/ 너는 어째서 촛불을 들고/ 고작 그것 하나만을 믿고/ 내 더러운 군화발 앞에 섰는가/'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는/ 나를 원망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72시간 연속 촛불집회가 이어졌던 6일 서울 세종로 버스 정류장에는 한 의경이 지었다는 시가 붙어 있었다.

경기도 기동대의 행정요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필자는 "의경을 지원해서 미안하고,동시대에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어서 미안하다"는 자조적인 고백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시를 접한 시민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막을 수밖에 없고 시위가 격해지면 경찰의 대응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어 서로 답답해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촛불집회가 한달이 넘도록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참가자들은 '전면 재협상'만을 요구하고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10 민주항쟁 21주년인 10일,전국적으로 '100만인 촛불 대행진'을 벌이기로 계획하는 등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집회에 대응하는 경찰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길거리 시위를 따라다니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느라 연일 새벽까지 강행군이다.

그런 와중에 양측간 충돌이 격화되고 결국 한 의경이 자기 또래의 한 여대생을 폭행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게 됐다.

공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의경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폭력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국 경찰과 집회 참가자 모두가 피해자가 된게 지금의 현실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72시간 연속 집회 첫날인 지난 5일 2만5000명 이상이 모였지만 당초 우려와 달리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 간 거친 욕설도 잦아들었다.

대신 여고생들이 버스 위의 전경을 향해 "멋있어요"를 외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됐다.

시민들도 전경들을 향해 '공격용 물병' 대신 빵과 초콜릿을 던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30시간을 넘어선 7일 새벽 1시 30분 경 시위대 일부는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인 광화문 새문안 교회 뒤편에서 신문로 한글회관 인근에서 경찰과 격렬히 대치하고 있다.

새문안 교회에는 안국동에서 시위를 마친 1만명이 넘는 참가자 상당수가 다시 합류해 경찰이 길을 비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부상을 입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다음은 '어느 의경의 눈물' 시 전문.


어느 의경의 눈물

아가-
왜 웃고 있니.

무엇이 그리 즐겁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냔 말이다.

폭도로 몰리는 것이,
머리가 깨져서 피 흘리는 것이
어디 즐거운 일이냐.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당장 교과서와 싸우기에도 바쁜 시간에…
너는 어째서 촛불을 들고
고작… 그것 하나만을 믿고서
내 더러운 군화발 앞에 섰는가.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다.
다만, 짐승이 되어버린 내 동료들이 밉고,
너무나도 무능력한 내 자신이 미울 뿐…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는
나를 원망한다.
증오하고, 또 저주한다.
섧다.
나는 운다.
목 놓아 꺼이꺼이 운다.

비라도 쏟아진다면-
그래서 이 내 오열이 하늘 멀리
퍼지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나는 네가 밉다.
하지 말라고 분명 한사코 말렸건만
철 없이 광화문 전 서 소리치던
네가 밉다.

너는 그저
한낱 싸구려 연예 가십이나 들여다보며
오르지 않는 성적을 한탄하며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전전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때로는 잘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골치 썩으며
친구들과 소주잔이나 기울여야 하는데…

너와 나는 그저
세상이 허락한 인연이 너무나도 무뎌
서로 만나 숨소리를
나누지 않아야만 하는데...

어느새
세상에 너무나도 깊게 뿌리내린
이 심오한 공포가 싫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네 잘못이 아님을…
내 잘못이 아님을…
그들은 시위대가…
폭도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이상과 진리와 현실과 규율과 감정,
이 수많은 괴리 속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래, 사실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단 그 말은 거짓이다.

나는 사랑하고 있다.
눈물 겹도록 아름다운 너희들의 불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운다.
그래, 그저 운다.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해서…
소리 내어 미친듯이 운다.

밤새워 울어 목이 쉬고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되었어도
사랑하는 네가 흘렸을 눈물과 피에 비하면
티끌 만치의 가치가 없지 않겠느냐...

계속해서 울고만 있다. 나는…
왜냐하면…

네가 자꾸 웃잖아…
괜찮다면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네가 너무 해맑게 웃잖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흐느끼며
너희가 사랑하는 '민주'를
나 역시 불러본다.

역사가 심약한 내게
어떤 깊은 원죄로 욕보여도
원망하지 않겠다.
나는 이 시대가 낳은
절름발이 사생아이므로…

민주야… 사랑한다-

민주야… 사랑한다-



디지털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