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등 강성 노동계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를 하투(夏鬪)의 동력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가 이 처럼 정치투쟁에 본격 나서기로 함에 따라 이미 고유가 충격에 휘청대는 국내 산업계가 또 다시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9일 오후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고시하기가 무섭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현대자동차 지부 등 노동계가 이 문제를 핵심 투쟁 이슈로 내걸고 전국 곳곳에서 미국산 쇠고기 저지 촛불집회를 여는 등 대정부 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는 부산항 컨테이너야적장에 보관돼 있는 미국 쇠고기의 운송을 막기로 했다.

또 경기남부지역 12개 냉동창고도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관계자는 "6월1일 오후 7시부터 6월2일 오후 6시까지 부산항 감만부두 컨테이너야적장 앞에서 미국 쇠고기 운송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항 컨테이너야적장에는 지난해 10월 이전 국내로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 5300t 가운데 약 3300t이 냉동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방침때문에 이날 현대차 노사간 대각선 교섭도 30여분만에 성과없이 끝나 노사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정갑득 위원장 명의로 현대차 지부에 촛불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긴급지침을 내려보낸 게 노사협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촛불시위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볼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유가급등 등으로 국가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고 정치적인 총파업에 대해 국민은 물론 일반 노조원들도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도 임금협상은 간데없고 정치투쟁 양상으로 변질되는데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금속노조 대각선 교섭에 대한 무용론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이날 현대차 노조 게시판에는 금속노조가 노사 임금교섭에 한미 FTA 저지와 매년 5%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하청업체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등을 중요 의제로 내놓은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한 조합원(아이디 조합원)은 "내가 만약 사장이라도 이런 요구사항을 놓고 어떻게 협상을 벌이겠느냐"고 분노했다.

그는 "이런 산별 임단협은 어디 국회에서나 볼수 있는 내용"이라며 "제발 노조가 쇠고기수입저지 촛불집회 등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디 '포타'란 조합원은 "지금 현대차 지부가 해야 할 일은 쇠고기 수입저지 문제가 아니라 고공행진하는 기름값을 내리는데 적극 앞장서야 한다"면서 "기름값이 자꾸 오르면 자동차 수요가 떨어지고 이는 결국 회사 경영도 타격을 입게되는데 어떻게 회사와는 무관한 쇠고기 문제에 매달려 회사를 위기로 내몰고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합리주의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신노동연합의 한 관계자는 "노조 지도부도 문제지만 일반 노조원들의 이 같은 정서를 지도부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강성 파업관성만 부추기는 현장 활동가들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울산시민들도 정치투쟁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무분규 노사화합을 이룬 현대차 노조가 올해 또 다시 심각한 노사갈등 구조에 빠지면서 노사분규 도시 울산이란 오명을 다시 뒤집어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시민들사이에 커지고 있다.

이두철 울산상의회장은 "한미 FTA는 한국경제가 살기위해 하루빨리 이뤄야할 지상과제"라면서 "노조가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노사협상에 개입시키면 노사관계의 파탄을 가져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또 다른 짐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해마다 민노총과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의 정치투쟁에 휘말려 크고 작은 정치 파업을 일으켜 임단협 파업을 포함해 노조 설립 이후 지난 21년간 파업 손실액이 10조원에 이른다.

이 기간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만 무려 107만3693대에 달한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