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공사 현장을 찾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건설 현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당초 공장 방문 일정은 이날 오후까지.정 회장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스케줄을 변경했다.

공사 현장의 안전대책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공장에서 아예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것.현장의 직원들은 공장 내 기술연구소에 임시 숙소를 마련했지만 정 회장은 다음날 새벽까지 현장 곳곳을 둘러보느라 거의 눈을 붙이지 않았다.

정 회장이 '무박 2일' 일정으로 국내 사업장을 점검한 것은 최근 수년간 없던 일이다.

당진공장을 찾은 것은 올 들어서만 벌써 10차례나 된다.

한 달에 두세 번꼴이다.

누구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스타일을 감안하더라도 잦은 발걸음이다.

정 회장의 잦은 당진행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그룹을 일궈내겠다는 집념으로부터 비롯됐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로 요약되는 그룹의 수직계열화는 정 회장의 오랜 숙원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고품질의 철강제품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말을 임직원들에게 틈날 때마다 강조한다.

올초 당진 공장을 찾은 정 회장은 500여명의 임직원을 한자리에 불러 자신의 지론을 직원들에게 설파했다.

"좋은 차는 좋은 품질에서 시작됩니다. 또 자동차 품질은 강판이 결정합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이 현대·기아차그룹의 미래를 열어가는 버팀목입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자회사인 현대하이스코를 통해 자동차 강판을 주로 공급받는다.

그러나 현대하이스코는 자동차 강판의 원재료인 열연강판(핫코일)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한다.

항상 국내외 업체에 손을 벌려야 한다.

현대제철도 아직은 고철을 녹여 철강제품을 만드는 '전기로(電氣爐)'업체에 머물러 있어 핫코일 공급에 한계가 있다.

외부 의존도가 높다 보니 마음에 맞는 자동차 강판을 구하기 힘들다.

"쇳물을 직접 뽑아낼 수만 있다면…."

현대·기아차그룹의 오랜 숙원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이 바로 당진 일관제철소다.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현대·기아차만을 위한 '맞춤형 자동차 강판'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정 회장의 당진 일관제철소에 대한 관심은 원재료 확보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호주의 BHP빌리톤과 브라질의 발레 등 광산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을 때마다 자리를 함께 했다.

당진 일관제철소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당진 지역경제도 꿈틀거리고 있다.

5조8400억원이 투자되는 건설 과정에서 7만8000개의 일자리와 13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유입 인구가 늘어난데 힘입어 시(市) 승격은 시간 문제다.

정 회장은 조만간 또 당진을 찾을 것이고,누군가에게 어김없이 꼼꼼한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나 현대제철 임직원들은 회장이 현장을 찾아 이런 저런 지적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받는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현대제철의 그룹 내 순위가 현대차와 기아차,현대모비스에 이어 4위지만 위상은 그보다 훨씬 높다"며 "회장께서 관심을 가질수록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