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과소비에 익숙해진 국민

이런 모습은 '한여름 스웨터,한겨울 반팔티'로 요약되는 과도한 냉난방의 풍속도다.

초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면과 큰 것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속에 에너지 자원을 아끼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2006년 국내에서 팔린 승용차 70만6888대 중 경차(800㏄ 이하,현재는 1000㏄ 이하)는 6%(3만9221대)에 불과했다.

2001년 12%에 달했던 경차 판매 비중이 반토막났다.

반면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은 배기량 1700~2000㏄급으로 38%(26만8552대)를 차지했고 2000㏄ 이상 대형차도 24%(17만4790대)에 달했다.

중대형 차가 3분의 2를 차지한 것이다.

혼수용 가전도 TV는 40인치대,냉장고는 양문형에다 와인셀러,김치냉장고 등 전기를 많이 먹는 대형 제품 일색이다.

에어컨 사용 등으로 인한 여름철 전기 수요량은 해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

2000년에 처음으로 4000만㎾를 넘어섰던 하루 최대 전력수요량은 2004년 5000만㎾를 넘었고 지난해에는 6228만㎾에 달했다.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량은 3.5% 늘어난 6449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시점을 감안해 발전소를 짓다 보면 나머지 기간에는 발전소를 놀리게 돼 국가경제에 커다란 낭비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효율 높일 인센티브가 없다

에너지 과소비 풍조가 팽배한 것은 국민의 절약의식 부재와 함께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는 데 따른 유인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차에만 주던 각종 혜택(세금 감면,공채 매입 면제 등)을 ℓ당 주행거리 15㎞ 이상인 연비 1등급 차량에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도 최근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체들도 굳이 연구비를 들여가며 고효율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등한히 한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지식경제부가 아파트 등 가정 실내온도까지 제한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에너지 절약정책은 아직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절약만 강조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에너지 고효율 제품에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제조업 과보호도 한몫

지난 30여년 동안 국내에선 제조업 육성을 명분으로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 정책을 펴왔다.

이는 국내 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현장에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을 100으로 볼 때 OECD 평균은 189.5로 한국보다 1.9배 높다.

경제 규모가 큰 일본(150.0),영국(171.0),독일(216.8) 등도 산업용 전기를 훨씬 비싸게 공급한다.

싼 전기를 쓸 수 있는 국내 기업들은 그만큼 에너지 효율에는 둔감해져 같은 제품을 생산해도 해외 경쟁기업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 것이다.

자원 투입계수를 비교해 보면 국내 제조업은 일본에 비해 동일한 산출액을 내는 데 자원을 1.8배 더 투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반기계는 일본의 2.9배,전자는 2.7배,자동차는 2.6배나 많은 자원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의 설비투자 계획 조사에 따르면 2006~2007년 중 제조업체들이 에너지 절약을 위한 투자액은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제조업 보호정책이 국제 에너지 수급과 가격 흐름에 착시를 불러와 결과적으로 경제 체질을 취약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오형규 생활경제부장(팀장),현승윤 경제부 차장,박수진(정치부),이정호ㆍ장창민(산업부),이태훈(경제부),김유미(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