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2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 경제가 처한 절박한 현실을 강조하며 17대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3차 오일쇼크로 다가서고 있는 초고유가, 세계 경제의 엔진인 미국의 침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내수부진, 월 평균 20만개에도 못미치는 고용창출력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미 FTA가 화급하다는 인식이다.

한.미 FTA 비준이 늦어지면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기대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정부의 비준동의안 제출부터 모든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국회 구성을 포함해 정치적 일정과 미국 측 상황까지 고려할 경우 비준이 장기화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FTA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우리 국회에서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켜 아직 한.미 FTA 이행법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 대통령의 절박한 경제 인식

이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지금 세계 경제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 유가, 식량 그리고 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고 미국 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빠른 시일 내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경제의 70% 이상을 대외에 의존하고 통상교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로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돼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늘고 국민소득이 올라간다"면서 "무엇보다 3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는만큼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 비준 1년 연기되면 15조원 손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에 열린 제10차 FTA 국내대책위원회에서 "한.미 FTA의 발효가 1년 연기되면 대한상공회의소 추정으로 15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한.미 FTA 발효로 예상했던 관세철폐에 따른 수출 가격경쟁력 향상, 미국 시장 선점 효과, 수입관세 철폐에 따른 국민 후생 증대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하게 돼 하루 410억원 정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이익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비준이 지연되면 우리 정부에 대한 국제 신뢰도가 떨어져 국내에 대한 외국인들의 직접투자가 줄어들 수 있고 한.미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의 FTA를 통해 일본, 중국 등 경쟁국에 앞서 미국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또 한.미 FTA가 비준되면 현재 진행중인 한.유럽연합(EU) FTA 협상에서 우리 입김을 강화할 수 있고 앞으로 예상되는 일본이나 중국과의 FTA에서도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지만 비준이 지연되면 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송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 팀장은 "협정 비준이 늦어지면 그에 따른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고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면서 "협정 체결 후에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교체됐다는 이유로 비준을 안 한다면 외국 시각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18대로 넘어가면 장기지연 가능성

한.미 FTA가 17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18대로 넘어가면 발효가 장기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정부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상임위 논의, 공청회, 청문회 등 17대에서 수차례 했던 절차를 반복해야 한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의 말처럼 공부는 17대에서 하고 시험은 18대에서 치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19일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비준안이 18대 국회로 넘어갈 경우 모든 절차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한.미 FTA 이행을 위해 국회에 상정한 20여개의 법령안도 폐기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18대 국회가 순항한다 해도 원 구성과 의원 설득 작업 등의 여건 조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9월 정기국회 이전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문제는 우리 측만 신경 써야 되는 게 아니라 미국 측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한.미 FTA는 양국의 국회와 의회에서 통과돼 발효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 일정 때문에 9월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비준안 논의가 어렵다.

우리가 먼저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해 미 의회와 행정부에 부담을 주고 압박하겠다는 우리 측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미국 대선 이후의 상황은 더욱 불투명하다.

대선에서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 민주당의 후보가 집권하면 한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는 재협상을 주장할 수 있고 한.미 FTA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