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작품에 밀려 소외돼왔던 추상화 작품에 매기가 붙을 조짐이다.

봄 시즌 들어 서울 청담동 인사동 등 화랑가에서는 원로 및 중견 추상화 작가 전시가 이어지고 있고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현재 전시회를 열고 있거나 열 예정인 작가는 이우환을 비롯해 박서보 이강소 하동철 김홍태 임효 김춘수 이영배 송현숙 홍푸르메 이동엽씨 등 10여명에 달한다.

그동안 구상회화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술시장을 주도했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상작품 가격이 워낙 많이 오른 데다 작품을 구하기도 어려운 데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작품도 많아 일부 수요가 추상쪽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가 프로모션하는 '묘법의 화가' 박서보씨의 작품 가격은 지난 1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올랐다.

작년 초까지만해도 100호(160.2×130.3㎝) 크기 작품이 점당 3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비슷한 크기가 7000만원을 호가한다.

아라리오 뉴욕 지점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 그의 근작 '묘법' 시리즈 25점을 내걸고 미국 컬렉터들의 반응을 타진 중이다.

서예의 필선으로 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이강소씨 작품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0호 크기 대작이 점당 5000만원대를 유지했으나 올 들어 작품에 따라 500만~1000만원 정도 오른 점당 5500만~6000만원을 호가한다.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예화랑에 마련한 개인전에서는 유연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기운과 생기를 묘사한 작품 '섬으로부터'등 20점을 내놓는다.

지난달 학고재화랑에서 작품전을 연 데 이어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개인전(6월29일까지)을 갖고 있는 한국의 대표 추상작가 이우환씨의 작품에도 매기가 일고 있다.

올초 미국 뉴욕의 페이스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100호 크기 '선으로부터'의 가격이 2억5000만~3억원에 형성돼 있다.

또 지난 3월 가나아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하종현씨의 경우도 출품작의 70% 가까이가 팔렸고,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정상화씨 작품에도 구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밖에 작고 작가 남관(100호 크기 작품 기준·2억~3억원) 윤형근(7000만~8000만원) 곽인식(5000만~6000만원) 전혁림(8000만원) 정상화(5000만원) 서세옥(6000만~7000만원) 정창섭(5000만~6000만원) 김창열(8000만~9000만원) 김태호(6000만원) 곽훈(4500만원) 김웅(4000만원) 송현숙(2000만원) 한만영(3000만원) 홍푸르메(3000만원) 김춘수(1300만원) 김영길(2500만원) 이영배(1800만원) 이강욱씨(1200만원) 작품도 작년보다 10~20% 정도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일부 추상화가들의 작품에 매기가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뚜렷한 회복세로 접어들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추상화 작품은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지난해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아파트 등 현대식 건축물에 어울린다"면서 "구상 작품에 식상한 강남권 컬렉터들을 중심으로 거래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김윤섭 한국미술경영구소장은 "한국은 구상작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된 만큼 단기간 내에 추상화가 부각될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q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