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올림픽' 즈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은행 창구와 관공서 민원부서 등의 높다란 칸막이가 낮아지고 개방됐다.

커피숍과 식당에서 칸막이가 없어진 건 물론 주방 역시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해놓는 곳이 늘었다.

전자는 원활한 의사 소통,후자는 위생적 조리실 공개를 위한 조치다.

비슷한 시절,일반 사무실엔 없던 칸막이가 생겼다.

개인용 컴퓨터 설치에 따라 모든 책상에 들어선 파티션이었다.

옆사람은 좀 낫지만 앞사람은 전혀 안보여 말하려면 일어서야 하니 자연히 대화가 줄어들었다.

급기야 젊은층에선 한팀끼리도 말 대신 메신저로 얘기를 주고받는다.

실내는 조용하지만 대신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다.

술자리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서로 사정을 파악하기 힘든 것도 물론이다.

칸막이는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외로운 섬처럼 만들 수 있다.

파티션이 이러니 별도의 방으로 구분되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할 리 없다.

청와대를 시작으로 정부 부처 곳곳에서 칸막이를 낮추거나 투명유리로 바꾼다고 한다.

기관장 집무실 벽,심지어 사무실 벽까지 헐어 유리로 교체했거나 한다는 것이다.

칸막이의 문제를 시정하고 투명한 행정을 펴겠다는 뜻일 텐데 모양새에 비해 실제 효율성은 장담하기 힘들어 보인다.

감추려 들면 칸막이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이사 중 멀쩡한 가구를 버리는 거나 있는 칸막이 뜯어내고 새로 하는 거나 세금 쓰긴 마찬가지다.

투명해야 한다는 건 죄다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가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공무원이고 회사원이고 일하게 만드는 건 윗사람 눈치 안보고,연줄 찾아 헤매지 않고,가끔 바른 소리를 해도 인정받는 공정한 인사와 비전이다.

하루 24시간은 똑같은데 윗사람 비위 맞추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의 순위는 밀릴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출범 100여일에 계속 삐걱거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