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 북부에 있는 카자흐스탄 카샤간 유전.최근 30년 사이 전 세계에서 발견된 유일한 '자이언트'(대형 유전)로 원유 매장량만 130억배럴에 달한다.

1998년부터 시작된 카샤간 유전개발 사업에는 이탈리아 석유회사 아집을 주축으로 셸,엑슨모빌,토탈,코노코필립스 등 내로라하는 오일 메이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메이저는 지난해 카자스흐스탄 정부의 갑작스러운 계약 재협상 통보를 받고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카샤간 광구의 원유 생산이 기술적인 이유로 당초 2005년에서 2011년으로 늦춰진 것과 관련,계약 위반으로 1억5000만달러의 벌금을 물리고 사업에 공동 참여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국영 석유기업 KMG(카즈무나이가스)의 지분을 8.33%에서 16.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카자흐스탄 정부가 밝힌 재협상 요지.이 같은 일방적 조치에 오일 메이저들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다.

중동을 대체할 새로운 자원 보고로 떠오르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원유,천연가스,광물 등 자원을 무기로 자국 이익을 관철시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헐값 유전'은 없다는 얘기다.

◆오일 메이저도 자원부국의 손바닥 위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 카자흐스탄은 이 같은 자원민족주의 중심에 서 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하던 1990년대 초 카스피해 유전 광구를 헐값에 분양했던 시절을 카자흐스탄은 '카샤간의 굴욕'이라고 여긴다.

이에 카자흐스탄은 작년 10월 '지하자원이용법'을 개정,카자흐스탄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외국 석유기업들이 카자흐스탄의 경제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조건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 법에서 계약조건 변경 사유로 든 '카자흐스탄 경제 이익에 반하는 행동'의 정의가 코에 걸면 코걸이,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모호하다는 점이다.

카샤간 광구처럼 생산 지연은 물론,유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까지 모두 계약 변경 사유로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이다.

날고 뛰는 오일 메이저도 카자흐스탄 정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즈베키스탄도 최근 정부조직에 지하자원개발위원회를 설립하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외국 석유기업들과 맺었던 20여건의 유전개발 계약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표면적으로는 계약조건의 이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지만,현지 진출 업체들은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맺어진 유전 계약을 대폭 손질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고 있다.

◆원유수출세까지 챙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유전 개발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계약 방식 변경과 세금 부과.카자흐스탄은 외국 기업과의 유전개발 계약에서 그동안 사용했던 수익배분방식(PSA) 대신 일종의 라이선스 계약인 '택스 앤드 로열티(tax & loyalty)' 방식을 채택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PSA는 외국 기업들이 탐사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인 데다 한 번 계약을 맺으면 조건을 바꾸기 쉽지 않다.

카자흐스탄으로선 수시로 세율을 바꿔 수익을 높일 수 있는 택스 앤드 로열티 방식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카자흐스탄에서 택스 앤드 로열티 방식으로 유전개발 계약을 맺으면 법인세,재산세,토지세는 물론 특소세,증권거래세,사회보장세 등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

자국에서 생산한 원유를 해외에 팔 경우 원유수출세를 부과하겠다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움직임도 석유개발 업체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달 중 공포될 원유수출세는 t당 109.9달러(배럴당 약 15달러 선)에 이른다.

카자흐스탄 현지의 한 오일 메이저 관계자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건설 경기가 침체되자 건설 분야에 투자할 세수 부족분을 자원 쪽에서 충당하려고 한다"며 "수출세 부담은 물론 택스 앤드 로열티 계약 방식으로 해외 업체들의 유전개발 이익이 줄어들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특별취재팀/알마티ㆍ아스타나(카자흐스탄)ㆍ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오형규생활경제부장(팀장),현승윤차장,박수진,이정호,장창민,이태훈,김유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