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제학 >

감사원이 지난달에 발표한 공기업 방만 경영사례나 비리 실태를 보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는 분야 중의 대표격이 바로 공기업임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31개 공기업에 대한 본감사가 끝나면 더 많은 비위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전 옛 기획예산처가 국회에 제출한 '2006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보고서'에서도 공기업 방만 경영이 심각한 수준임이 진단됐고,그간 추진돼온 공기업 경영혁신이 구호에 그쳐 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것이 엊그제 아니던가.

공기업 비리는 그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기 전에는 아무리 잘라내도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현실을 보면서 민영화밖에는 그 근원적 치유책을 찾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전력ㆍ통신ㆍ철도 등 막대한 고정비용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나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은 시장(민간)부문에 맡겨두면 자연적으로 독점산업화한다.

그 산업이 공익성이 강할 경우 정부가 공기업의 형태로 운영해온 것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관례로 돼 왔다.

그러나 공기업 속성상 민간기업에 비해 이윤 동기가 부족하고 비효율적인 방만 경영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각국은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철도ㆍ전기ㆍ가스 분야 민영화에 이어 우정공사 민영화까지 마무리했는데,이는 공기업의 구조개혁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조세연구원이 내놓은 '공기업 민영화 성과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기업 민영화 성과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포스코,KT,KT&G,두산중공업 등 상업성이 강한 공기업 다수를 민영화했다.

당시 정부와 공기업 종사자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선 민영화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대부분 기우(杞憂)로 나타났다.

한국통신(KT)의 경우 네트워크 산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영화에 따른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경제가 핵심 네트워크 산업을 민영화해 성공적인 경영성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타 공기업의 민영화가 더 이상 지체하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사례 중의 하나다.

청와대가 공기업 개혁의 속도를 내기 위해 일부 공기업의 경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소유'의 민영화에 앞서 '운영권' 민영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선행해 운영과 경영부터 민간에 맡기는 방식이다.

공기업 개혁을 위한 전반적인 방향설정은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러나 600여개에 이르는 공기업 및 산하기관에 대한 개혁 방안이 졸속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공기업에 대한 철저한 경영평가와 치밀한 단계적 이행 방안이 분야별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 대상의 우선순위가 체계적인 기준에 의해 설정돼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공익성,주식 시장의 수급현황,혁신도시 건설과의 관계,황금주 도입 여부,연기금 활용여부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상당하다.

우선순위의 설정 과정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지주회사 설립 등으로 운영권 민영화를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할 대상 공기업 선정에서도 시행착오가 없도록 면밀한 대비가 요망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두 달 반 동안 충분한 준비와 치밀한 사전계획이나 이행전략 없이 개혁의 의지만 앞서 졸속으로 밀어붙인 정책이 분야별로 상당수에 이르러 대다수 국민들은 수삼년이나 지난 것처럼 개혁의 피로증을 체감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는 더 이상 시행착오가 없도록 철두철미한 점검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