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과천 정부청사 1동 기획재정부 4층 예산실.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장,과장은 한 사람도 없었다.

부처별 예산 배분을 논의하는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27~28일)'를 이틀 앞두고 한창 바빠야 할 예산실이 왜 텅 비었을까.

김규옥 재정부 대변인은 "예산 총액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하려고 하는지 국·과장이 직접 각 부처에 설명해 주러 갔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사회가 변하고 있다.

예산을 주무르는 '갑(甲) 중의 갑' 재정부 공무원들이 각 부처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선 것만 봐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예산실 사무관이 전화 한 통만 걸어도 실무부처 국장은 '버선발'로 뛰어들어왔다.

재정전략회의(옛 재원배분회의)가 열리는 매년 이맘 때면 "조금이라도 더 달라"고 로비를 하기 위해 예산실 주변을 맴도는 공무원이 너무 많아 각 부처 업무는 '올스톱'될 정도였다.

과천 청사는 주차장도 바뀌었다.

재정부와 법무부는 최근 국장급 이상 고위직에 배정되던 주차장 지정석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각동마다 50면 규모의 주차장 한 블록을 '민원인 전용'으로 못박고 공무원의 주차를 금지시키고 있다.

때문에 1급부터 9급까지 아침마다 똑같이 '주차전쟁'을 벌이지만 정부부처를 찾아온 민간 기업 관계자들은 "차 댈 곳이 많아져서 좋다"며 기분 좋아한다.

예전처럼 가끔 나오는 빈자리를 찾기 위해 청사를 헤매는 민원인 차량은 더 이상 찾아 보기 어렵다.

지난 23일부터 재외공관장회의를 열고 있는 외교통상부도 서열 중심의 과거 관행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년만 해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이른바 '4강' 대사(장관급)와 주요국 대사에겐 인천공항으로 의전차량을 보냈으나 올해엔 이런 관행을 모두 없앴다.

공관장 전체회의 좌석 배치도 과거엔 장·차관을 지냈는지 여부,고시 기수,본부 간부 역임 여부 등을 따져 서열순으로 자리에 앉도록 했지만 이번에는 가나다 순으로 앉히는 파격도 시도했다.

졸지에 가나와 가봉 대사가 맨 앞자리에 앉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 같은 변화를 놓고 일부에서는 "공무원들 정신차리라"는 대통령의 호통 때문에 잠깐 '깜짝쇼'를 하는 것이라며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냉소'를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작은 변화가 쌓여서 커다란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비록 '보여주기식'일지라도 관료 사회가 몸을 낮추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시훈/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