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열린 한ㆍ일 정상회담의 화두는 크게 '미래'와 '실질 경제협력ㆍ교류 확대'였다.

이전의 정상회담에서 의제의 맨 위쪽에 차지했던 '과거사'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부품ㆍ소재산업 분야의 무역불균형 시정에 힘을 쏟기로 하는 등 '실용외교'차원에 포인트가 집중적으로 맞춰졌다.

◆큰 바람에 안 흔들리는 관계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양국이 서로를 향해,또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ㆍ일 양국이 '과거'에서 벗어나 21세기에 맞는 실용주의 자세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한ㆍ일관계의 신시대를 열고,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데 제약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못을 박았다.

한ㆍ일 간에 이런 공감대가 이뤄진 때문인지 양 정상은 독도 영유권 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특히 양 정상은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구축의 일환으로 2005년 6월 이후 중단된 셔틀외교를 복원하기로 했다.

셔틀외교는 한ㆍ일 정상이 격식 없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는 것을 뜻한다.

이 대통령은 오는 7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G8(서방선진 8개국) 정상회의 때를 비롯해 올해에만 일본 총리와 5~6차례의 셔틀외교성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경협ㆍ교류 확대

양국 간 경협 문제와 관련,실질적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의 경제 관계를 균형있게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점이 핵심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수출과 수입은 각각 264억달러,563억달러로 적자규모가 299억달러에 달했다.

부품ㆍ소재 산업 등에 대한 일본의 기술이전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탓이 크며,이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무역적자 폭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기술이전을 포함,일본기업의 대한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국내 '부품ㆍ소재전용공단'설치를 검토키로 한 것은 이런 시급성을 반영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양국 재계 지도자들이 정상회담에 맞춰 일본에서 한ㆍ일 비즈니스 서미트 라운드를 연 뒤 그 결과를 양 정상에 보고하고,두 사람이 이를 추인함으로써 '실효성 있는'경제협력 체제를 구축했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다만 경협과 관련,양국 정상 간의 방점은 조금 달랐다.

후쿠다 총리는 한ㆍ일 경제연계협정(EPAㆍ자유무역협정의 일종)교섭재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 반면,이 대통령은 무역불균형 시정 쪽에 무게중심을 뒀다.

이 대통령은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를 요구했으나 후쿠다 총리는 "골치 아픈 사안"이라며 피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후쿠다 총리는 이 대통령의 '비핵ㆍ개방ㆍ3000(북핵 폐기 전제,10년 후 북한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정책을 지지하며,"일본도 보너스가 있다고 북한에 전해달라"고 말했다.

북핵ㆍ납치문제가 해결되면 일본도 대북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쿄=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