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9총선에서 거대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여러 가지 면에서 17대 열린우리당과 닮은꼴이다.

열린우리당에 비해 한 석 더 많은 153석을 얻어 과반에 턱걸이한 점에서부터 계파 갈등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두 당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원외가 되는 비운을 겪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자신의 '노인폄하' 발언이 선거 과정에 역풍을 불러오자 총선이 치러지기 사흘 전 비례대표 후보(22번)에서 사퇴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역시 공천갈등이 폭발 일보 직전까지 가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 전 의장은 총선이 치러진 다음 달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강 대표도 조기 전당대회론이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전대가 7월로 예정돼 있는 만큼 어차피 선거 후 석 달 만에 물러나게 돼 있다.

당내가 불안한 것도 공통점이다.

개혁성향이 강한 386그룹부터 관료 출신의 실용파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했던 열린우리당은 총선 직후부터 노선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개혁이냐 실용이냐'를 놓고 주요 현안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간 갈등도 불거져 결국에는 당이 해체됐다.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경우 정치적 성향은 비슷하지만 '친이(親李)''친박(親朴)' 간 뿌리 깊은 갈등이 계속되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에 놓여 있다.

당장 친박연대 등의 복당 여부와 당 대표 선출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힘있는 여당'으로서 중요 현안에 대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아직 정권 초반임에도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반도 대운하' 조기 추진에 급제동을 건 상태다.

최근 정부가 발표했다가 철회한 혁신도시 재검토,학교의 수업 편성권 강화 등에 대해서도 정책위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내놨다.

대기업 정책과 부동산 대책,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 야당이던 한나라당보다 정부정책에 더 비판적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연상케 한다.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관련,여당 의원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친박 측이 대운하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히 하고 있어 앞으로 이명박 정부는 야당보다 여당을 설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할 처지다.

한나라당이 과거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지,아니면 초기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해 명실상부한 집권 여당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