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 "일반적인 배임ㆍ조세포탈과는 다르다"
조준웅 삼성특검은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경영진 10명을 배임과 조세포탈 등 3개 혐의로 기소하면서도 불구속키로 한 데 대해 "삼성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벌였던 당시의 현실과 법에는 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전환사채 발행 등은 전형적인 배임ㆍ조세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 특검이 밝힌 불구속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법과 현실의 괴리,삼성의 핵심 경영진을 구속수사할 경우의 경제적 파장,삼성에 환부를 털어내고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등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 인정해야

특검이 이 회장 등에 대해 불구속 결정을 내리면서 고심한 흔적은 수사결과 발표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개별적 특수성,시대적 상황,국제화와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기여라는 단어들이 발표문 곳곳에 들어 있다.

특검은 특히 총수를 중심으로 한 한국적 경영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과거 행위에 엄격한 현행법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주요 경영진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경우 불거질 엄청난 경제적 파장도 언급했다.

경영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최소화해 줌으로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수용한 셈이다.

특검은 수사결과 발표문에서 '기업 경영 및 지배구조를 유지 관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내재돼 있던 불법행위'라는 표현을 썼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임원의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분산 보유하고 있던 불법 사실을 적시한 문구다.

또 '그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배임 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며 불법 사실이 특정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음을 적시했다.

특검은 소유 지분의 차명 보유를 불법으로 판단했지만 과거 대기업 총수들이 차명으로라도 지분을 분산해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을 배려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기업 총수들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명분 아래 대주주 지분을 분산하라는 정부의 강압적 정책에 따라 본인 지분율은 낮추면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임원이나 경영진 이름을 빌리는 관행적 편법을 써왔기 때문이다.

◆개별적 특수성도 감안

특검은 차명계좌를 보유해 지분을 분산하고 지배력을 유지하려던 대기업 총수들의 행위가 현행법으로는 불가피하게 불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인신 구속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인정했다.

조 특검은 "평등한 법적용이 개별적 특수성이나 시대적 상황 등 다른 요소는 전혀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 같은 이유를 뒷받침했다.

또 이 회장 등에 대한 구속 재판이 강행될 경우 신인도 추락 등 경제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우려했다.

조 특검은 "피의자들이 대기업 그룹의 회장 또는 최고경영자 등 중추적인 핵심임원들로서 신병을 구속하면 기업 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경쟁이 극심한 글로벌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거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 삼성이 더욱 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바라는 사회적 기대를 수용한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특검수사의 여파가 삼성그룹 경영 전반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충격과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특검은 삼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체제를 갖춰 명실 상부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며,우리기업 전체의 선진화를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발표문 말미에 강조했다.

삼성특검은 과거의 행위에 대해 현행법을 적용한 엄격한 단죄보다는 미래로 가는 전기가 돼야 함을 시사한 점이 주목된다.

유근석 기자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