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특검에 재소환된 가운데 그룹 계열사 중 특히 삼성전자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회장 측은 차명계좌로 들어간 돈이 상속받은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속 재산이 아닌 삼성전자 회사 돈이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 회사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됐다면 이는 ‘횡령’에 해당되고, 삼성전자는 형사상 처벌은 물론 투명성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날 일부 언론에 따르면 특검팀은 최근 금융감독원 계좌추적을 통해 2004년 삼성전자에서 임원 명의 차명계좌로 130억여원이 입금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좌수표로 입금된 돈이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이는 데 쓰였고 배당금은 전액 현금 인출됐다는 것.

또 삼성 측이 이 회장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데 썼다고 주장한 계좌 수와 특검이 밝혀낸 차명계좌 수가 불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계열사에서 빼돌린 비자금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특검이 지난 10일 삼성전자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도 이같은 의혹에 대한 단서 찾기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며, 이 회장 재소환에서도 이에 대한 추궁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대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횡령에 대한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회사 돈 693억원을 횡령한 혐의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해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8400억원의 사회 환원, 사회봉사 등을 선고받고 지난해 풀려났으나, 이날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양형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사 처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객과 시장의 불신이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일단 알려진 금액만 해도 100억원이 넘는데, 이 정도가 불법자금으로 나갔다면 회계 투명성에 주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며 “주주대표소송이나 감사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삼성이 임원들에 대한 실권주 배정 방식으로 비자금을 관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참여연대가 조사한 삼성, 현대, LG, SK 4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유상증사 실권주 배정실태를 보면, 1998~2000년 8월 중 삼성은 40회의 유상증자 중 37회(92.5%)를 이사회 결의로 그룹 임원 등 특정인에게 배당했다.

실권주의 제3자 배정 비율이 현대(12.5%), LG(50.0%), SK(9.1%) 등 다른 그룹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또 실권주를 인수한 등기임원의 숫자도 170명으로 4대 그룹 전체의 실권주 인수 임원 234명의 72.6%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등기임원들이 같은 기간 실권주 평가이익과 처분이익으로 모두 289억원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그룹 전체적으로는 임원들의 실권주 이익이 429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차명재산의 원천을 밝혀 선대 회장 상속재산이라는 주장의 허위성을 규명해야 한다”며 “이건희-이학수-김인주 등으로 이어진 구조본의 불법적 의사결정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3.66% 오른 68만원에 마감해 9개월만에 시가총액 100조원을 재돌파했다. 시가총액 비중은 11.12%에 달한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