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젓ㆍ떡갈비ㆍ삼합ㆍ더덕장아찌…이게 바로 남도 맛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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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젓ㆍ떡갈비ㆍ삼합ㆍ더덕장아찌…이게 바로 남도 맛이지라!
아휴.손을 하나도 안 댔네…."
고들고들하게 지은 밥을 놋수저로 뜨고 토하젓을 올려 입에 문 채 젓가락으로는 떡갈비 한 점을 떼어냈다.
청국장을 한 술 뜨려는데 눈은 벌써 채신없이 삼합을 욕심 낸다.
5년 묵은 김치에서 첫 봄바람 같은 맛이 났다.
장독대들이 시원하게 봄비를 맞던 날 남도에서 '40첩 큰 상'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음식이 턱까지 찼는데 주인은 '찬에 손을 하나도 안 댔다'고 꾸지람이다.
남도의 인심은 이렇게 차고 넘친다.
전남 담양에서 20년째 '전통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윤해경씨(72·11대 조부가 고산 윤선도)의 큰 상에는 떡갈비·조기구이·삼합·홍어찜·참게장·삼치조림·모듬전에 청국장·시래깃국·들깨토란국이 따라오고 토하젓·진석화젓·돔배젓·멸치젓에 양아·무·굴비·마늘종·더덕 장아찌가 놓였다.
죽순회·말린홍합·호두강정·마른고추튀김에 취나물·고사리나물,1년·3년·5년차 김치까지 줄지어 놓이니 상 위에 한 치의 빈 자리도 없다.
가격은 2만~3만5000원.가격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그대로'라고….
남도는 논과 바다,강이 만나 예로부터 먹거리가 다채롭고 기온이 높아 장아찌와 발효음식이 발달했다.
특히 고산의 가문은 장아찌와 장 솜씨로 이름난 명문가다.
윤씨는 "대소가가 대체로 부유하고 손님 내왕이 많았는데 옛날엔 냉장고가 없으니까 장과 장아찌,젓갈을 철마다 갖춰놓고 먹었다"고 설명했다.
남도의 맛은 메주 띄우기에서 시작된다.
음력 9월 말이면 메주 덩이를 크게 해서 바람 치는 곳에 띄운다.
밖에 널어야지 방에 널면 메주 속이 까맣게 돼 간장이 색만 짙고 맛이 없어진단다.
"모든 맛은 간장 된장이에요.
요새는 나물을 예쁘게 한답시고 데쳐서 씻어불고 소금으로만 간하는데 뭔 맛이 있어야지.그래서 화학조미료를 쓰는가 보죠.하지만 간장으로 무치면 깊은 맛이 있어요."
장아찌 담그기도 이 집 큰 행사다.
제철 재료는 때를 놓치면 1년을 못 먹기 때문에 바짝 긴장한다.
배추나 고추 등 김장거리는 밭에서 비료 없이 퇴비만 놓아 단단하게 키우지만 식당에 대는 장아찌 재료는 정읍이나 인근 장으로 사러 간다.
짜게 먹던 옛날엔 멸치젓에 담가 먹어도 좋았지만 요즘은 삼삼하게 간장에 놓는 것도 달라진 모습.
씨는 그래도 "장 맛은 옛날 그대로라 일은 사람을 사 쓰더라도 내가 직접 꽉 데리고 한다"고 했다.
일제 징용과 전쟁 통에 가족은 흩어지고 그 많던 가산도 흔적이 없어졌지만 음식 맛만큼은 명가(名家)에 고집스럽게 흐르고 있다.
윤씨는 '얌전하고 솜씨 좋은 양반집 며느리'였던 어머니에게서 배운 솜씨를 둘째 딸 김난이씨(48)에게 가르친다.
난이씨는 처음엔 몸이 일을 배겨내지 못하다가 15년째가 넘어선 지금에야 "조금 알겠으니까 재미가 생긴다"고 했다.
"내가 식당에 딸애 데려올 때부터 당부한 게 삼삼한 음식 추가하는 것은 좋지만 밑반찬은 절대 바꾸거나 변형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밥은 먹고 살 것이다,그렁께 이거 하나는 따르도록 해라' 한 거죠."
그런데 윤씨도 가끔은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자식들한테 너무 힘든 걸 물려준다 싶응께요.
식당 처음 열 땐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는데 한번 묻힌 거라 놓아지질 않아요.
그래도 손님들이 맛있게 잡수셨다고 하면 보람 있어요."
윤씨는 조만간 서울 나들이를 한다.
롯데호텔 서울 한식당 무궁화가 오는 21일부터 30일까지 마련한 '남도 요리 명인 윤해경 초청 행사'에서 일품 요리와 점심·저녁 코스 상차림을 내는 일이다.
서울 물가에다 특급 호텔이라 가격은 착하지 않다.
일품 요리가 3만5000~5만원,점심 코스 7만원,저녁 코스는 12만원이다.
담양=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