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 짚고/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가는데/ 돌기둥이 내 무릎에 충돌하여/ 순간,별이 번쩍이고 하늘이 노래진다.'('인도 위에 파묻힌 지뢰들' 중)

시인인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 도서관장(47)은 1982년 군대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그는 이번에 펴낸 첫 시집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청동거울)에서 두 눈을 잃은 슬픔과 절망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좌절했지만 시를 통해 희망을 되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를 쓴 만큼 작품 속에는 앞 못 보는 사람의 아픔들이 아련하게 녹아 있다.

'이리 쿵,/ 저리 쿵,/ 벽에 걸린 거울에도 쿵,/ 이마엔 선혈이 낭자하고/ 왼쪽 발등엔 깨진 유리 조각이 꽂혔다// 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시각장애인의 애환' 중)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아프게 꼬집는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무지함을 속시원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솔직하면서 톡톡 튀는 문체 또한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때마침 지나가는 피서객에게/ 설악산장 가는 방향이 어디요?/ 저쪽으로 쭈우욱 가세요/ 저쪽이 어딘가요?// 그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저기요 저기!'('소통의 부재' 중)

송씨를 절망에서 이끌어낸 또 하나의 힘은 마라톤이다.

1998년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눈으로 느끼지 못한 바람과 꽃내음 등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가 더욱 빛나는 것도 마라톤을 통한 삶의 긍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륙 도보로 횡단했다고/ 목포에서 임진각/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도보로 종단했다고 자만하지 말자//(중략)// 그 다음엔 또/ 남극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다시/ 신발 끈을 바짝 조여 매자.'('신발 끈을 바짝 조이자' 중)

그는 미국 대륙 2002㎞ 도보 횡단,부산~임진각 625㎞ 도보 종단 등을 해내고 2005년과 2006년에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중국 고비사막에서 열린 250㎞ 구간의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꼽히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코스까지 완주했다.

올해 11월에 열릴 남극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해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김용택 시인은 "어쩌면 그렇게 두 눈이 성한 우리들보다 세상의 사물들을 그림처럼 정확하게 그려내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며 "육체적인 두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세상의 진리와 이치를 바로 보고 바로 세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