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27일 교수 승진 심사에서 정교수를 신청한 부교수 39명 가운데 10명을 탈락시킨 것은 서울대 62년 역사에서 최대 사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공무원에 이어 교수사회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철밥통'을 깨야 한다는 시대 조류에 서울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거 승진 탈락을 두고 일부 서울대 교수들이 "엄격해진 심사 기준을 교수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등 학교가 교수를 무시했다"면서 반발하고 있어 적잖은 갈등이 우려되고 있다.

◆형식 심사에서 탈피

서울대는 그동안 정년 및 승진 심사 통과율이 100%에 가까워 사실상 형식적인 심사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대가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승진 심사 신청에서 탈락한 경우는 부교수에서 정교수 승진 심사가 334명 가운데 4명,조교수에서 정교수 승진이 218명 중 1명 등 모두 5명에 그쳤다.

'시간강사→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이어지는 교수 승진 과정에서 계약직인 시간강사를 빼면 서울대 교수들은 전임강사만 되면 정년을 보장받는 정교수까지 사실상 무임승차 해왔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과학 분야에서 서울대와 쌍벽을 이루는 KAIST는 지난해 테뉴어(Tenureㆍ정년 보장) 심사에서 신청 교수 15명을 무더기로 탈락시켰으며 올 들어서도 연구실적이 부진한 교수 6명을 재임용에서 떨구는 등 엄격한 자기관리를 해왔다.

미국 하버드대는 테뉴어 심사에서 매년 신청 교수 절반이 떨어지는 등 서울대와 비교가 안 된다.

◆심사 기준 더 강화

김완진 서울대 교무처장은 "정교수 승진이 곧 정년 보장인 만큼,심사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데 모든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이번 탈락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나아가 서울대는 승진과 정년 보장 심사에 외부인사가 참여토록 해 앞으로 더욱 객관적이고 엄격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서울대는 지난 24일 열린 예비심사위원회에 외부인이 참여한 데 이어 앞으로는 심사위원회의 3분의 1 이상을 외부인사로 구성할 방침이다.

외국인 학자의 참여도 의무화해 '서울대판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탄생하게 생겼다.

◆교수들 반발

심사 결과가 알려진 이날 서울대 교수사회는 벌집을 쑤신 듯한 분위기로 변했다.

특히 프로젝트 수주나 논문 평가 등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자연대ㆍ공대와 달리 성과를 쉽게 수치화하기 어려운 인문ㆍ사회계열 교수들의 반발이 컸다.

사회대의 A교수는 "KAIST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정년 보장 심사를 강화했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 '우리도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적은 있지만 정말로 이번 학기부터 심사가 강화될 것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과 한마디 협의도 없이 갑자기 기준을 강화한 것은 성급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후배'들의 승진 심사 탈락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일부 단과대학장들은 '씁쓸하다'는 평가를 남겼다.

한 학장은 "단과대학에서 평가를 해서 본부에 제출할 때 이미 실력과 연구 성과를 어느 정도 검증했다고 여겼는데 불과 수시간 만에 수십명의 자료를 검토해 승진 유보(탈락)를 결정해 아쉽다"고 전했다.

반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큰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옹호론도 만만찮았다.

호문혁 법대학장은 "학장단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던 부분"이라며 "외부인사를 심사에 참여시키는 등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는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상은/정태웅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