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수 신임 한국경영학회장(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학자가 강단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연구만 열심히 하면 됐지 전면에 나서는 게 모양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14일 한국경영학회장으로서 공식 업무를 시작한 박 교수는 달라졌다.

교수, 재계 관계자 등 3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사회과학분야 최대 학회의 신임 회장으로 제 목소리를 내며 국가 경영과 기업 경영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지나친 정부 규제와 과격한 노조활동이 기업인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며 "기업인의 기를 살려주는 게 곧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경영학이 마치 의류처럼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 기업활동을 패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10일 서울대 교수실에서 박 신임 회장을 만났다.


-한국경영학회는 해마다 경영 분야의 화두를 던지는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올해의 화두는 무엇인가.

"나라를 살리는 경영,'구국경영'으로 가닥을 잡았다.

보국경영,강국경영 등 적합한 단어를 고르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경영이 잘돼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도 '경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국가란 법과 규칙을 집행하는 행정기구로 여겨졌다.

앞으로는 국가도 목표를 정하고,그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경영자'라고 봐야 한다."

-새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잘 배분하거나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과일을 맺는 나무를 잘 가꾸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 붕괴 현상을 겪고 있다.

어느 나라나 제조업이 취약하면 기업이 잘 되기가 쉽지 않다.

제조업 기반 붕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은 서비스산업이다.

인건비가 비싸 제조업이 활발하지 않은 런던의 경우 영화 오락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산업과 문화 예술 디자인 등에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두 개의 축을 가지고 가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그렇다고 보나.

"투자를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기업인들을 만나면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타잔이 정글에 들어가기 전에 양주 반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맨정신으로는 못 들어가니까.

마찬가지로 회사 오너들도 양주 반병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단다.

오전에는 정부 방침에 얻어맞고 오후에는 노조에 얻어맞기 때문이란다.

뼈가 있는 얘기다.

맨정신으로,기업가 정신으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규제가 많아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다.

공룡이 왜 죽었나.

달라진 환경 때문이다.

삼성의 국내 매출액은 전체의 10%에 불과한데 국내 규제에 맞추라는 것은 삼성이 달라진 글로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가 있는 이유는 우리 기업들의 투명도,윤리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기준에 맞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업을 비판할 때 대부분 과거사를 이야기한다.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다면 왜 했을까.

기업인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외부의 대출 요건을 맞추고 정부의 기준을 맞추고 하기 위해서다.

재무상태가 나쁘면 대출도 못 받고 투자 유치도 어렵다.

이것을 음성적으로 해결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잘못됐다.

하지만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경유착도 그렇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에 밥을 사고 술을 사야만 일이 제대로 되는 환경이 업무에 방해가 되면 됐지 더 편했을 리는 없다.

무조건 비윤리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활동할 운동장을 닦아주는 것이다.

운동할 때 팬티 바람으로 하든 뭘 하든 그건 자유다.

지금은 모두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뛰라는 형국이다.

정부가 정작 힘을 쏟아야 할 일은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에너지와 통신 분야 같은 미래의 '국방'에 신경쓰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자원시장 개척을 대부분 기업들이 도맡아 했다.

기업이 가서 길을 닦아 놓으면 정부 관료들이 따라 들어왔다.

거꾸로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을 유발하며 세계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이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기존에는 중국 현지 생산으로 원가 차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답이 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쌓아놓고도 개별 기업이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손놓고 기다리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최근 경영학의 트렌드는 뭔가.

"질문이 잘못됐다.

요즘 경영학은 마치 패션상품처럼 트렌드,시장 기류를 따라 입맛에 맞는 얘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고민없는 경영학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경영 현상을 총체적으로,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예측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지식 장사꾼'이 판친다.

마치 보약장사처럼 오늘은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내일은 저 약을 먹으면 낫는다 이렇게 물건 팔기에 여념이 없다.

컨설팅 회사들이 만든 과오이기도 하다.

패션과 패러다임은 다르다.

학자들은 현업에 있지 않다.

경영 실무 경험은 없지만 큰 흐름을 보고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줄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

-패션 지향적인 경영학의 사례를 들어 달라.

"기업의 소유 경영과 지배구조에 대한 최근의 논의가 단적인 예다.

외국의 특정 사례를 바탕으로 거기가 어떻게 하니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한동안 경영학 교과서에 전문경영인 도입이 최선의 방책인 것처럼 나왔다.

한때 나도 그렇게 강의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 회사들의 경쟁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 생각했다.

오너십이 없으면 회사가 큰 방향을 결정하기 어렵고 단기적 이익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라인을 하나 건설하려면 4조~5조원이 필요하다.

경쟁자가 생기니 몇 년 후에 또 4조~5조원이 필요하다.

이런 결정을 전문경영인은 못한다."

-삼성그룹의 경우 오너십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경영권 상속이 문제로 지적되지 않나.

"전문 경영 능력이 없는 오너십이 무조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재용 전무의 경우는 어떻게 보나.

)이 전무는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벤처는 원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벤처를 하는 이유는 실패사례에서 배우고,성장모델을 찾기 위한 것이다.

3M의 포스트잇도 원래는 실패한 사내기업(벤처의 어원은 사내기업)이었지 않나.

벤처기업 투자에서 당장 수익을 못 냈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

-2003년부터 3년간 경영대 학장을 맡아 서울대 MBA를 추진했다.

지난해 첫 신입생을 받은 서울대 MBA의 현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여건에 비해 굉장히 훌륭하게 하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 모셔온 강사진의 수준이 무척 높아 학생들도 만족하고 있다.

최근 국내 MBA 평가자료를 보면 서울대가 대부분 2위로 자리매김돼 있는데 그보다는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글=정태웅/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