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전 등 핵심사항은 회사가 독자결정
노조 의견 묻지만 동의 얻을 필요는 없어


"공장 이전,신기술 개발까지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노조와 협의를 할 뿐이지요."

네덜란드 사용자단체(AWVN)의 로널드 드 레이즈 전략정책담당관은 "노조의 경영참여제도는 중요 경영사항까지 간섭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며 "회사는 경영상 중요한 이슈는 노조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 초기 때 교과서로 삼으려 했던 네덜란드식 노조 경영참여는 우리나라 노사가 단체협상에서 체결하고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네덜란드식 모델은 노사안정을 꾀하는 모델로 도입할 만하다"고 밝혀 국내 대기업 노조의 기대심리를 높인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네덜란드에서 경영참여는 노조의 권한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다.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조항은 노동시간의 시작과 종료,임금 지불 방식,개별근로자에 대한 채용 등으로 국한돼 있다.

생산거점 이동,단축노동 및 근로자 전환배치,인사ㆍ징계 등 경영권과 관련해선 노조의 동의가 필요없다.

레이즈 정책담당관은 "노조는 회사 측의 결정에 반발할 수 있지만 한 달이 지나면 회사는 자신들의 결정을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노조의 반대로 회사가 경영을 못 하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이다.

노조의 경영참가는 북유럽에서도 제한적이다.노르웨이에서는 사용자가 공장 이전,신제품 개발 등에 대한 경영정보를 노조에 충분히 설명해 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주요 경영사항을 수행하기 전에 사전 협의를 안 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용자는 경영사항에 대해 노조 동의를 얻지 않고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스웨덴 역시 노조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인 경영권을 침해할 수 없도록 돼 있다.기업이 공장 해외 이전을 결정하면 노조는 항의집회를 할 수 있지만 이를 철회시키지는 못한다.

스웨덴 공동결정법에도 경영 결정 사항과 관련해선 사용자는 노조에 협의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노조의 동의를 받을 의무가 없다.

스웨덴 TCO(사무직노총)의 매츠 에세미르 연구원은 "노동조합은 파워가 막강하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LO(스웨덴생산직노총)와 친밀한 사민당조차도 기업의 경영권에 대해선 시비를 걸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 폐쇄,신기술 도입,제품 개발 등을 할 때는 사용자가 이미 결정해 놓고 노조의 의견을 묻는 식"이라며 "그렇다고 노조가 사용자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세계적 제약회사인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스티그 플린트 부사장은 "지금껏 노조에서 신약 개발,해외 공장 신설 등 회사 경영권에 간섭하거나 반대의견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노사공동결정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독일에서도 노조의 경영참여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근로자 대표가 참여권을 행사하는 식이다.

노조는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투자,휴업 및 생산거점 이동,단축노동,근로자 전환배치,공장 이전,인사ㆍ징계 등 경영권과 관련해선 노조의 의견을 물어야 하지만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다.

지멘스가 2004년 헝가리 지역으로 공장 이전을 결정했을 때도 노조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당시 헝가리에 50만평의 땅을 사놓은 지멘스는 노조가 임금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헝가리로 이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노조의 양보를 얻어냈다.

노조는 임금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함으로써 회사 측의 결정을 되돌려 놓아 근로자 2000명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럽식 경영참가 모델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동현장에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노조 조직 형태나 운동 방식이 다르고 경영 형태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식 공동결정제를 마치 노조가 경영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도입할 경우 역효과만 낼 것으로 우려된다.

암스테르담=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