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3일 3년1개월 만에 최고치인 102엔대까지 치솟았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인한 달러 약세의 반작용이다.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도 100엔당 910원대까지 뛰었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엔 '희소식'이지만 일본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로부터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속화

엔화 가치는 지난 주말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달러당 105엔선이 깨진 뒤 가파른 강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은 미국 경기의 침체 우려로 시장에서 '달러 투매'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를 내다 팔고 보다 안정적인 엔화와 유로화를 사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달러 폭락-엔화 급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까지 값싼 엔화 자금을 빌려 고수익 외화자산에 투자했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엔화 매입)돼 일본으로 되돌아오면서 엔화 급등에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지난해 5.25%이던 기준금리를 3.0%로 낮춘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오는 18일 또다시 금리를 내리면 미·일 간 금리 격차가 더 줄어들어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은 글로벌 증시에 투자된 일본 자금을 빠져나오게 만들어 증시엔 악재로 꼽힌다.

엔화 폭등으로 이날 도쿄 증시는 폭락을 면치 못했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에 따라 아시아 증시가 대부분 하락했지만 닛케이평균주가의 하락률(4.49%)은 특히 두드러졌다. 엔화 강세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걱정이 하락을 부채질한 것이다.

달러 하락·엔화 상승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공산이 크다. 미국 경기가 당분간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카미 가즈유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수석조사역은 "미국 경기를 보는 시장의 시각은 비관적"이라며 "엔화가치는 이번 주 중 달러당 101엔대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 반사이익 기대

이날 원·엔 환율도 100엔당 917원98전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이다. '엔고'는 한국 경제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해외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품목들이 많아 한국 기업은 수출이 늘어나는 등 반사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 신승관 연구위원은 "엔화 가치가 원화에 대해 10% 상승할 때 한국의 수출은 연간 3%(109억4000만달러) 늘고 수입은 0.6%(22억4000만달러) 증가해 결과적으로 87억달러의 무역흑자 효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위원은 또 "지난 1년간 원·엔 환율이 10% 이상 오른 걸 감안하면 앞으로 4년간 약 350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부품·소재 기계류 등을 수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수입단가 상승으로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 또 저금리를 노려 엔화로 대출을 받은 기업이나 개인들은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예컨대 엔화 대출로 50억원을 빌린 경우 원·엔 환율이 10% 오르면 대출 원금이 5억원 불어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