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침체.신용위기.고유가.

물가상승 악순환

미국 경제의 신음 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를 늪에 빠지게 한 주택시장 침체와 이에 따른 신용위기가 끝이 보이지 않은 채 지속되는 가운데 원유와 농산물 등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은 커지고 실물경제가 둔화되는 신호도 곳곳에서 나타나 미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빠진 양상이다.

미 언론들도 경제는 침체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30년만에 되살아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사정의 악화를 막기 위한 미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있지만 물가상승 우려가 향후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제한할 것으로 보여 미국 경제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주택시장 침체 및 신용위기 지속 = 미 주택시장은 끝이 안 보이는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 상무부가 27일 발표한 1월 신규주택판매는 연율기준으로 58만8천채로 전달보다 2.8% 감소하면서 1995년 2월 이후 13년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1년전과 비교하면 34%나 감소했다.

신규주택 중간가격도 21만6천달러로 전월보다 4.3% 떨어지고, 작년 동월과 비교하면 15.1% 떨어져 사상 최대의 하락률을 보였다.

전날 발표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케이스-쉴러의 전국 주택가격 지수도 작년 4.4분기에 1년전보다 8.9% 떨어지며 20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주택가격의 하락은 집 소유자들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면서 소비지출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택시장의 끝없는 침체 속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금융기관의 신용위기도 범위가 확대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들은 모기지 관련 채권 부실에 따른 손실로 2007년 이후 1천630억달러의 자산상각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추가 자산상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5일 씨티그룹과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JP모건 체이스, 베어스턴스 등 주요 금융기관들의 추가적인 자산상각이 회사별로 14억달러에서 최대 1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들의 1.4분기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작년 하반기에 이뤄진 금융기관들의 자산상각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부채담보부증권(CDO)에 집중됐으나 1분기에는 서브프라임을 포함한 주거용 모기지 관련 채권 전분야, 상업용 모기지 관련 채권, 차입대출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 커지는 물가 압력..실물경제도 타격 =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밀과 콩 등 농산물 가격도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물가상승 압력은 갈수록 커져 가계살림을 쪼들리게 만들고 소비위축을 불러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이날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전날보다 1.2% 하락한 배럴당 99.64달러에 거래를 마쳤지만 개장전 시간외 거래에서 배럴당 102.08달러까지 치솟아 최고치를 기록했고, 5월 인도분 밀 가격은 장중에 11% 오르면서 사상 최고가인 부셸 당 13.495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26일 현재 미국의 평균 휘발유 소비자가는 갤런당 3.14달러로 2주전에 비해 19센트나 올랐다.

이는 1년전의 2.35달러와 비교하면 33.6%나 오른 것이다.

경유 소비자가도 26일 갤런당 3.60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1년전의 2.62달러에 비해 1달러 가까이 올랐다.

유류가격 상승은 가정의 소비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에너지 위기였던 1980년대에 미국 가정의 가처분소득에서 에너지비의 비중은 8%를 기록한 뒤 유가 하락과 함께 1990년대에는 4% 아래로 내려갔으나 최근 다시 상승세를 보여 작년 12월에는 6.1%에 달해 198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이날 전했다.

1990년대와 비교해 2%포인트가 높아진 비중은 금액으로 따지면 2천억달러에 달해 그만큼 다른 소비가 줄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률을 키워 정책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미 노동부가 26일 발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식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달보다 1%나 올랐고,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7.4%나 올라 1981년 이후 27년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이중 에너지 가격이 1.5% 오르고, 식품 가격이 3년3개월만에 최고치인 1.7% 올라 유가와 식품 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0.4% 상승, 지난해 12월의 0.2%에 이어 2개월 연속 올랐다.

특히 식품가격이 0.7% 올라 농산물 가격 상승의 반증했다.

또한 미 달러화가 유로화에 대해 1.5달러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저치로 가치가 추락하는 등 달러화의 지속적인 약세도 미국의 수출 상품 가격 경쟁력은 높이는 반면 수입물가 부담을 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국 경제의 둔화는 제조업 경기의 냉각으로 입증되고 있다.

미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1월 내구재 주문은 5.3% 급감하면서 5개월 만에 가장 크게 감소했다.

내구재 주문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민간 항공기와 자동차에서 중기계와 컴퓨터까지 전 범위에서 걸쳐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돼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최근 발표한 2월 필라델피아 제조업 지수도 전월의 -20.9에서 -24로 떨어져 지난 2001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가 0을 밑돌았다는 것은 경기침체를 의미한다.

◇ 커지는 비관론 =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날 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경기하강 위험이 여전하다"면서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를 적기에 취할 것이라고 밝혀 연방기금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수 있음을 또 한번 시사했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경제여건이 작년 여름 이후 뚜렷하게 좋지 않은 상황으로 변했다고 진단,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졌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회복시키고 물가도 잡으려는 중앙은행의 노력은 성공하기 어렵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를 전하면서 중앙은행이 실업률을 낮추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경제성장 둔화와 물가상승이 같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그 정도가 과거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5일 "현재 금융분야의 문제가 전에 우리가 잠시 겪었던 것에 비해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이번에 경기침체가 오면 과거의 2차례의 경미한 침체보다 심각하다고 해도 놀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도 최근 경기침체가 오면 과거보다 기간이 길고 고통도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20일 WSJ에 기고한 글에서 1991년과 2001년의 경기침체는 8개월간 지속했고 좀 더 심했던 1981년의 경기침체도 16개월간 지속됐을 뿐이라면서 과거의 경기침체는 당시의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비롯됐지만 현재의 경제성장 둔화와 경기침체 위험은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라 6년간 급등한 주택가격 거품의 붕괴에 따른 것이어서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완화한다고 해서 경기침체를 끝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었다.

글로벌인사이트의 이코노미스트인 니젤 골트는 이날 NYT에 신용위기와 주택시장 붕괴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오일 쇼크까지 추가되고 있다고 고유가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무리 미국 경제라 해도 이런 모든 문제들을 동시에 견뎌낼 수는 없다"고 우려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