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이 코스피지수 1700선 위에서는 철저히 몸을 사리고 있다.

시장에선 1700선 안착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주요 주체인 기관투자가는 적극적인 시장 참여를 꺼리고 있다.국내 펀더멘털(내재가치)은 별 문제가 없는데 수급 상황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22일 만에 자금 순유출로 돌아섰고,개인 실탄인 고객예탁금은 10조원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기관의 '눈치보기'가 이어지는 한 1700선 위에서 상승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700선에서 몸 사리는 기관

기관은 1700선 아래서는 사고 위에서는 관망하거나 오히려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21일 기관은 1331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순수하게 사들인 게 아니다.기관은 선물과 연계된 기계적인 프로그램 차익거래 순매수(1728억원)를 감안하면 사실상 이날 397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셈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이후 코스피지수가 장중 1700선을 넘으면서부터 실제 주식을 내다팔았다.차익거래를 감안할 경우 기관은 20일 510억원어치를 순매도했으며 19일과 18일에도 각각 82억원,2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데 그쳤다.이전에 하루 2000억원 안팎의 주식을 사들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선영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규 자금 유입이 더뎌진 상황인 데다 주도주마저 부각되지 않으면서 관망하는 모습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증시 관련 자금 상황도 녹록지 않다.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은 19일 501억원이 순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지난달 15일 이후 22영업일 만이다.

이병훈 굿모닝신한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펀드 대량 매수 시점인 1700선에 근접하면서 소량이지만 환매가 나타났다"고 말했다.고객예탁금도 작년 11월 10조원대가 무너진 이후 9조원대를 맴돌고 있다.

증시 관련 자금이 줄어든 데다 기관마저 몸을 사리면서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나흘 연속으로 5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기관 왜 안 사나

김영일 한화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손이 안 나간다"는 말로 현 시황관을 내비쳤다.그는 "미 경기 둔화나 실적 하향 조정에 대한 위험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도 "세계 거시경제 변수나 물가 불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며 "1600~1750 사이의 박스권으로 보고 있어 1700선을 넘으면 박스권 상단이어서 오히려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간다"고 말했다.그는 올 상반기까지는 이 같은 박스권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1715를 적정 코스피지수로 본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700선을 중심으로 공방을 펼치다 또 한 차례 출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 센터장은 "지금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신용 경색 문제가 주가를 압박했으나 앞으로는 물가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글로벌 물가 관련 지표들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올 것으로 우려했다.그는 "확인할 걸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관이 섣불리 공격적으로 사들이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주식형펀드의 주식 편입 비중은 92.55%로 7%가 넘는 자산을 현금 등 유동자산으로 갖고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