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런민(人民)대 교수 렁청진(冷成金)은 이름 그대로 동양 고전과 콘텐츠로 돈(金)을 만들(成) 줄 아는 작가다.

이미 '변경(辨經)'을 통해 인사관리나 사람 보는 법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고,'지전(智典)'으로 현대인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며 중국을 넘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한 작가다.

그의 책을 서가에 꽂아놓으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고 무언가 많이 갖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이번에 번역된 '유가 인간학'(김태성 옮김,21세기북스)은 렁청진의 기존 백과전서식 모듬세트와는 조금 차별되는 책이다.작가보다는 학자로서의 접근이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다.

저자는 중국 사상의 큰 틀을 인간학에 맞추고 있다.서양이 진리와 신에 대한 천착을 추구하는 문화였다면 중국은 애초부터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불확실성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를 지략형 문화의 발상기라고 규정하고 그 시대의 독서인계층(literate)이었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정치적 관심이 이런 지략형 문화를 낳게 했다고 한다.

이들은 위정(爲政)과 치인(治人)이 목표였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고,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동시키느냐가 이들의 궁극적 목표이자 서술 방식이었다.

유가적 지식인들은 지략이나 전략보다 도덕과 예악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리더십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전달되어야 하며,통치는 전략이 아니라 지도자의 덕(德)이나 사회적 예악(禮樂)을 통해 백성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 인간학의 특징이다.

인술(仁術)은 법술(法術)보다 효과적이며 배려와 설득은 강요와 억압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렁청진은 유가 인간학을 인물론으로 풀어내고 있다.나라는 험준한 산하보다 지도자의 덕정(德政)에 의지해야 한다는 오기(吳起)나 소도둑을 개과천선하게 한 왕열,명령 없이도 부하를 따르게 했던 이광 장군 등의 일화를 통해 도덕성이 명예와 실리를 모두 이루게 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나아가 인자(仁者)의 정치가 나약하거나 비굴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고 소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인자무적(仁者無敵)의 정신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루 세 번이나 왕을 꾸짖는 용기를 보여주었던 제(齊)나라 관리 안영,변법을 주장한 신당과 그것을 반대한 구당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느라 탄압을 받은 소식,강인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성품으로 무측천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 적인걸,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협객 형가의 이야기 등은 유가의 인간학이 결코 나약한 인자(仁者)의 처세술이 아니라 당당한 소신을 지켜나가는 대장부(大丈夫)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고전과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붐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한창이다.이제 그리스 신화와 르네상스시대의 인물을 꿰차는 것보다 동양의 신화와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 더욱 세련된 교양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렁청진의 '유가 인간학'은 우리에게 다양한 동양 인문학적 재료들을 제공하고 있다.그것을 요리하고 자신의 살로 만드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320쪽,1만3800원.

박재희 중국철학자ㆍ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empal.com